8일 울산과기원은 생명과학과 임정훈 교수 연구팀이 히드라의 수면 행동을 관찰해 세계 최초로 이러한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그간 수면 행동은 뇌의 휴식을 위한 고등 동물의 생체 활동으로 여겨져 왔다.
히드라는 뇌가 없는 원시적 형태의 자포동물이다.
자포동물이란 산호, 말미잘, 해파리와 같이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특화된 자세포를 가지고 있는 동물을 말한다.
연구팀은 적외선 카메라로 24시간 연속 히드라를 촬영했을 때 불이 꺼진 밤 동안 히드라가 둔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동물 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수면 행동의 특징들을 하나씩 검증해 이러한 히드라의 '둔한 움직임'이 사람의 수면에 해당하는 결론을 얻었다. 동물은 수면이 부족해질 경우 다음 날 수면 욕구가 증가해 수면의 양과 질이 늘어나는데, 이처럼 매일 일정한 수준의 잠을 자려고 하는 성질을 '수면 항상성'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물리적인 자극을 주거나 배양 온도를 높여주면 히드라의 수면이 저해돼 다음 날 상대적인 수면량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히드라에게도 수면 항상성이 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melatonin)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gamma-aminobutyric acid)를 히드라에게 투여할 경우 사람과 마찬가지로 수면이 증가하는 것도 관찰됐다.
반면 각성을 유도해 수면을 억제하는 도파민(dopamine)을 히드라에게 투여하면 사람과는 다르게 수면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도파민 역할이 생물 진화 과정에서 정반대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초파리, 쥐 등에서 수면을 촉진하는 인산화 효소로 알려진 PRKG1 유전자가 히드라의 수면도 촉진하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또 뇌가 없는 히드라가 왜 수면 행동을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히드라의 수면을 억제한 결과, 억제 방법에 상관없이 모두 히드라의 체세포 증식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히드라가 체세포 증식을 촉진하기 위해 잠을 잔다는 것을 증명했다. 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중추신경계 진화에 따라 수면의 조절 원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해 수면의 기원을 찾는 데 중요한 발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는 일본 규슈대 타이치 이토 교수팀과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7일 자(현지 시각)로 공개됐다.
연구 수행은 서경배과학재단, 한국연구재단의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X-프로젝트, 글로벌박사양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