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 효과 신중히 따져야
김진성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jskim1028@hankyung.com
한 금융회사 임원의 말이다. 최근 채권 시장에서 눈에 띄는 움직임 중 하나는 장기 금리 상승세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연 1.296%였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9월 초 연 1.5%를 넘어설 정도로 급등했다. 이후 한국은행의 5조원 규모 국고채 매입 결정으로 다소 진정되긴 했지만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여전히 연 1.4%를 웃돈다.
장기 금리가 크게 뛴 것은 국고채 발행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가라앉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채권 시장에선 정부가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160조원 이상의 국고채를 발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 발행이 평소 수요보다 늘어나면 그만큼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서둘러 채권 매도에 나서면서 최근 채권 가격 하락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금리는 상승한다.
장기 금리 상승 여파는 회사채 시장으로도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량등급 회사채 금리도 함께 오르면서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의 금리 매력은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민간 채권평가사들이 시가 평가한 3년 만기 A+ 등급 회사채 금리는 연 1.751%로 5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금리(연 1.696%)보다 겨우 0.05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이 정도 금리 차라면 투자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위험이 더 작은 AA- 등급 5년물을 담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속되고 있는 비우량 회사채 소외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AA- 등급 미만 회사채 공모에서 미달이 잇따르면서 올해 기관 대상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한 공모 채권 물량이 어느덧 1조5140억원(9월말 기준)까지 불어났다. 2015년(1조9780억원) 후 5년 만의 최대 수준이다.
유동성 확보 수단 중 하나인 채권 발행이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고 자금을 빌려야 한다. 국고채 발행 급증이 민간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빚을 내기는 쉽지만, 빚을 낼 때 나타나는 변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파급효과가 생길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한 뒤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