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임기' 차기 총리 경쟁 '돌발' 개막하며 정치권 소용돌이
정국 안정시키려면 코로나 대응하며 국회해산 또는 총재 재선출
멀어진 개헌…미일 외교 불확성 커지고 한일관계 시각차 여전
[포스트 아베] 장기 집권에 급제동…혼란에 빠져드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중도 사임하기로 함에 일본 정국은 혼돈에 빠져들 전망이다.

8년 만에 새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다음 달 새로운 내각이 출범할 전망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면서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으로 꼽았지만 이루지 못한 개헌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또 국정의 주요한 축이던 외교 정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한일 관계의 변화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장기 정권의 종결…8년 만의 대권 경쟁 돌발 개막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가운데 정권의 종결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나 그의 사퇴 선언은 일본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아베 총리는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직을 유지해 행정의 공백을 막겠다고 했으나 연속 7년 8개월 이어진 행정 수반이 교체된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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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른바 '결정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추진력 있는 정부를 표방하며 인사권을 전례 없이 강하게 틀어쥔 가운데 일선 성청(省廳·중앙행정기관)이 정권 실세와 총리관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일본 근·현대 정치에서 최장기간 이어진 막강 권력의 구심점 소멸을 앞두고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 총리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28일 도쿄 주식시장의 닛케이 평균주가(225종, 닛케이지수)가 장중 한때 2.65% 하락한 것은 이런 우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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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직격탄은 차기 총리를 꿈꾸던 주자들에게 떨어졌다.

평소에 의욕을 드러내던 이른바 '포스트 아베' 정치인들에게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우선 감지됐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은 차기 도전에 의욕을 드러내기는 했으나 당장 출마 선언을 하기보다는 "우선 (아베 총리에게) 경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반응을 28일 내놓았다.

과거에 총재 선거에 반복해 도전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자신에게 불리한 방식인 자민당 의원 중심의 총재 선거가 추진되는 흐름을 의식했는지 출마 여부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하고 선거 방식에 관한 의문을 드러냈다.

특정 파벌에 속하지는 않지만, 위기관리 능력 등을 주목받아 총재 선거의 변수로 급부상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상태다.

아베 총리는 차기 총재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뜻이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언명했다.

하지만 그가 속한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에서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자민당 선거대책본부장과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간사장 직무대행이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운을 띄웠다.

호소다파는 누구를 지원할지 태도를 정하지 못한 상태이며 아베 총리가 차라리 후계자를 지목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전했다.

◇ 코로나 대응 발등의 불…'1년짜리' 총재 권력 안정 난항
현재 진행되는 흐름으로 보면 차기 총재는 다음 달 중에 결정되고 새 내각도 곧 발족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로써 일본 정국이 안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확진자 증가 추세가 다소 진정하고는 있으나 긴급사태가 선언돼 있던 시기보다는 여전히 훨씬 많은 이들의 감염이 매일 보고되고 있다.

또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 만큼 내각 교체에 따른 코로나 대책 혼선을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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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재임 중에 추진한 천 마스크 배포(일명 아베노마스크) 사업,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등의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이라서 이에 관한 정치적 판단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신임 총재의 임기가 아베 총리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 말까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총재가 되더라도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셈이다.

자민당 총재를 겸직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기 일본 총리는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내년 9월 말 총재 선거에서 재선되거나 국회를 해산한 후 선거에서 유권자의 신임을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적인 선거를 시행하는 것은 정치적인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국회 해산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도박인데 고려해야 코로나19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차기 총리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질 수 있다.

현직 중의원의 임기는 내년 10월 21일 만료하기 때문에 만약 국회를 해산하지 않더라도 새 내각 발족 후 1년 정도 지나면 어차피 총선을 치르게 된다.

◇ 개헌 불투명·외교정책 등 집중 어려울 듯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으로 꼽았던 개헌을 차기 내각이 그대로 이어받아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이 1946년 11월 3일 현행 헌법을 공포한 후 한 번도 개정하지 못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개헌 자체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중·참의원 모두 국회의원 정원의 3분의 2 이상이 모두 동의해야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고 국민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도록 한 개헌 요건을 충족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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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헌법 개정, 특히 평화 헌법 조항으로 불리는 9조 개정에 대한 우려와 신중론이 그만큼 뿌리 깊다.

2016년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 결과 개헌에 의욕을 보이는 개헌 세력이 국회의 3분의 2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개헌안 발의 요건을 충족했으나 이후 사학재단 비리 의혹 등이 이어지면서 여론이 악화했다.

내 손으로 개헌을 이루겠다고 강조한 아베 총리는 개헌안 발의조차 못 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정권이 불안정한 가운데 개헌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전염병 확산 시 긴급 대응을 위한 조항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법률의 범위에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아 실질적인 개헌 동력이 될 가능성이 현 단계에서는 크지 않다.

인적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외교정책은 제한된 방식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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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국인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투명해 일본의 대비 외교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나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에 장기간 에너지를 쏟았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고 차기 총리가 이들 현안을 당장 본 궤도에서 다루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자민당 내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이 고조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이 언제 실현될지도 불명확하다.

◇ 한일관계 변화 있을까…1965년 체제 근본적 시각차
아베 정권이 한국에 대한 강경 정책을 주도했던만큼 한일 관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최근 한일 간에 최대 현안이 된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양국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일본 총리가 바뀐다고 일본의 태도에 즉각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작다.

다만 총리의 정치적 결단과 대화 의지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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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한국이 국제법 위반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응하지 않았던 만큼 차기 총리가 대화에 응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국 지도자가 대화하며 해법을 논의하는 가운데 한일 간에 서로를 대하는 국민감정에 변화가 생기면 일본 제철 등 피고 기업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일 관계의 한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의 차기 총리 사이에 활발한 대화가 이뤄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총리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 사이에 역사 문제나 한국에 대한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국내 정치 안정을 위해 이른바 '한국 때리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여론을 의식해 양국 갈등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