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알지만 급한 경우 대리처방도…수술 일정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
온갖 잡무에 환자 폭언까지…전공의 공백에 지쳐가는 간호사들
"오죽하면 처방시스템에 쓰이는 의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간호사들이 공유하고 있을까요?"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 무기한 파업이 일주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부산지역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일선 간호사들이 이들의 공백을 메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년째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A(27)씨는 "진통제 투약 등 비교적 간단한 처방의 경우 본래 전공의가 내리지만, 현재로선 간호사가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애초 처방권은 의사에게 주어지는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간호사의 대리처방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간호사들은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달리 방도가 없다고 말한다.

28일 부산시에 따르면 집단 휴진에 참여한 부산지역 전공의는 770명으로 전체 전공의의 84.3%에 이른다.

지난 21일부터 대학병원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순차적으로 무기한 파업에 나선 데 이어 전임의까지 가세하면서 인력난은 현실화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전공의가 없어지면서 각종 상처소독, EKG(심전도 검사), ABGA(동맥혈가스검사), 동의서 작성 등 온갖 업무가 자신들에게 몰리고 있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4년 차 간호사 김모(26)씨는 "전공의가 없으니 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간호사가 추가로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게다가 전공의 업무가 모두 간호사에게 전가돼 평소보다 일을 배로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온갖 잡무에 환자 폭언까지…전공의 공백에 지쳐가는 간호사들
또 전공의 자리에 대체 투입된 교수들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점 역시 간호사들에겐 부담이다.

부산 한 대학병원의 1년 차 간호사 B씨는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항상 병동에 있는 전공의에게는 보고하기가 수월했다"라며 "가장 윗선이면서 외래진료로 바쁜 교수에게 자잘한 보고까지 해야 하니 난처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진료·수술이 밀리면서 생기는 환자의 불만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간호사 몫이다.

또 다른 간호사는 "아픈 몸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자 불안감 때문에 폭언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부재로 인한 피해는 환자들에게도 돌아온다.

60대 중반 어머니를 모시는 C씨는 모친 어깨뼈에 종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대형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해운대백병원에 연락했지만 8∼9월은 전공의 파업으로 진료 예약이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는 "타지역은 상황이 나을까 싶어 울산대병원에 전화했는데 11월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어머니가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부산지역 대학병원들의 수술이나 응급실 가동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과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존 환자 진료 외 신규 진료는 힘든 경우도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평소보다 수술 건수가 절반가량 줄었고, 기존에 예약했던 진료만 진행하는 등 외래진료와 입원 환자도 줄이는 추세"라며 "다른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