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포수 몰리나와 만나 볼 배합 극대화 'KK'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안산공고 재학 시절 빠른 직구와 느린 커브를 잘 던지는 투수로 유명했다.
특히 커브는 궤적의 변화가 심해 프로에서도 곧바로 통할 수 있는 공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KBO리그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김광현은 주무기 '커브' 대신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KBO리그를 평정했다.
어느 순간부터 김광현의 주무기는 커브가 아닌 슬라이더가 돼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훗날 김광현은 "사실 고교 시절 던졌던 커브는 슬라이더 그립으로 던졌던 공인데 공이 워낙 느려 커브로 인식됐던 것"이라며 "프로 데뷔 후 슬라이더의 구속이 빨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설적이게도 김광현은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자신을 프로행으로 이끌었던 '커브' 구종을 다듬는 데 집중했다.
직구-슬라이더 투피치 스타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없고, 이는 선발로서 한계를 느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광현은 커브 완성 여부를 메이저리그 성공 여부의 열쇠로 여겼다.
23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 경기는 커브의 완성 여부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리였다.
김광현은 이날 경기 전까지 두 차례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했지만, 모두 짧은 이닝만 소화했다.
마무리 투수로 나선 지난달 23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경기 9회에 등판해 1이닝을 던졌고, 첫 선발 등판한 18일 시카고 컵스와 원정 경기에서도 투구 수 조절 때문에 3⅓이닝을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23일 경기는 달랐다.
이날 경기는 김광현이 투구 수를 늘린 만큼, 최소 5이닝 이상 길게 끌고 가야 했다.
직구-슬라이더의 단조로운 볼 배합이 아닌, 제3구종 등을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김광현은 상대 타자들과 한 차례씩 맞대결을 펼친 뒤 두 번째 대결부터 '커브'를 핵심구로 활용했다.
베테랑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는 상대 타자들의 허를 찌르기 위해 초구 커브를 사인 냈고, 김광현은 시속 100㎞대 낙차 큰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특히 5회가 백미였다.
김광현은 4명의 타자 중 3명에게 커브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김광현의 승부수와 몰리나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간 김광현은 이후 빠른 몸쪽 직구 등으로 상대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뺐고, 실점 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성했다.
이날 김광현은 83개의 공을 던진 가운데 커브를 11개 뿌렸다.
커브의 최고 구속은 시속 118㎞, 최저 구속은 시속 109㎞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