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 '유산기부 1호' 양효석씨…"2호, 3호 계속 나오면 뿌듯할 것"
"모래알 같은 존재지만…어려운 이웃에 내 유산 쓰였으면"
이달 4일 오전 한 50대 남성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 찾아왔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 한쪽이 불편한데도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고 표정은 결연했다.

유명인도, 엄청난 자산가도 아닌 버스 기사 출신 '평범한 시민' 양효석(57)씨였다.

이날 양씨는 전 재산인 공시지가 1억8천만원 상당의 서울 빌라 1채와 본인 명의 통장을 사후에 기부하기로 약속하면서 재단의 '유산기부 1호 후원자'가 됐다.

그는 재단이 지난해 4월 유산기부센터를 세우고 기부를 받기 시작한 이래 1년여 만에 처음 나타난 후원자다.

양씨 외에 증인 등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해 유언 공증과 서약을 했다.

후원 사실을 크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양씨의 뜻에 따른 것이다.

양씨는 자신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을 한사코 피했다.

애초에는 기부 소식이 보도되는 것도 거부했다가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알리자는 재단의 설득을 받아들여 얼굴 공개 없이 서면 인터뷰에만 응했다.

그는 15일 '1호 후원자'가 된 소감으로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담담하다"며 자신은 후원을 많이 한 것도 아니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저를 시작으로 2호, 3호가 계속 나올 수 있다면 뿌듯할 것 같다"고 했다.

양씨는 기업 등에서 일하다가 10여년 전부터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2년 전 버스를 몰던 도중 갑자기 신체 왼쪽이 마비되는 뇌경색 증상이 오면서 쓰러져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을 그만두고 투병 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는 처음으로 '유산을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는 "스스로 이 땅의 모래알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면서 "파지 줍는 할머니께서 전 재산인 몇백만원의 유산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평소에도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며 "1년 반 동안 투병하며 '웰 다잉'(Well Dying·존엄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내가 남기고 떠날 재산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이면 참 좋겠다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사고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서 치료비를 지원받은 덕에 부담을 덜고 기부 의지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유산 전부를 남에게 선뜻 내주기가 망설여지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사람인지라 만약 100억대 재산이 있었다면 욕심을 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부는 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유산기부에 대해 주변의 반대는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재단 관계자는 "양 후원자는 기부 사실을 주변에는 전혀 미리 알리지 않고 뜻을 굳게 품으셨다"고 전했다.

양씨는 "제 유산은 재단을 믿고 맡긴다.

재단의 전문가들이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모래알 같은 존재지만…어려운 이웃에 내 유산 쓰였으면"
한국자선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기부금 12조9천억원에서 유산기부 비율은 0.5%에 불과하다.

유산기부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각각 8%, 33% 수준이다.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는 "보통 유산기부는 사회 지도층이나 자산가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1호 후원 사례를 통해 누구나 유산을 기부할 수 있다는 인식이 조금이나마 자리잡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