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장맛비가 물러나고 폭염경보까지 내려졌던 지난 11일 자정 무렵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 휴가철을 맞아 밤마다 젊은이들이 몰려와 백사장을 가득 채우고,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우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백사장 주변 출입구에는 야간에도 단속요원이 배치돼 피서객들이 들고 가는 물건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른바 치킨이나 술, 음식물로 보이는 물건은 여기서 상당수 걸러진다.
철심에 화약을 바른 폭죽을 든 피서객들도 발견되면 돌려 보내진다.
야간이지만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단속요원은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느슨하게 쓴 피서객에는 주의를 주고 시정을 당부했다.
백사장 바닥에는 인근 치킨집에서 뿌린 광고 전단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지난해처럼 둘러앉아 치킨과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취객이 먹다 백사장에 쏟아버린 술 냄새가 진동하던 해변에서는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넘쳐나던 쓰레기통은 대부분 비어 있고 백사장은 야간에도 깨끗하게 유지됐다.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니 술병이나 음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과자 봉지 등이 바닥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전년까지 술 취한 피서객들이 동료를 바닷물에 던지는 장난을 치던 백사장 가장자리에서는 바닷물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이날 밤 경포해변을 찾은 피서객들은 밤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연인들은 삼행시를 지으며 백사장을 거닐었다.
지난해까지 야간에 보이지 않았던 안전요원들은 올해는 바닷물과 피서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스피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치맥이 금지되고, 위반 시 300만원 이하의 벌금과 코로나 발생 시 방역 비용까지 물리겠다는 안내방송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왔다.
강원도는 지난해 30만 명 이상이 방문한 경포해수욕장 등 도내 8개 해수욕장을 대상으로 집합제한 행정명령을 내리고, 지난달 18일부터 야간 취식을 금지했다.
경포해수욕장에서 취객과 쓰레기가 사라지는 계기가 된 것은 '해수욕장 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단속요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감시 활동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뒷짐을 지고 있던 강릉시는 올해는 해가 진 직후부터 매일 밤 수십 명의 단속·계도요원을 해변에 투입하고 있다.
해수욕장 출입구부터 단속요원이 배치되고, 백사장에는 자율방범대원 등이 수시로 계도 활동을 벌이자 취객이 자리를 펴고 앉을 틈이 사라진 것이다.
한 자율방범대원은 "지난해까지 술에 취한 피서객과 시비라도 벌어질까 다니기 힘들었던 백사장에서 올해는 술병과 쓰레기가 거의 사라졌다"며 "피서철마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곳으로 소문나 창피했었는데 이번에 '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릉시도 치맥 금지 효과가 큰 것으로 보고 피서객들이 제대로 휴식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채희 관광과장은 "매일 밤 출입구에서 피서객이 음식물과 폭죽을 가지고 들어가는지 확인하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큰 마찰은 없었다"며 "코로나19 발생 이후 해변 문화가 달라지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피서객 의식도 개선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경포해변이 명품해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도 확인됐다.
코로나19로 단속 활동이 강화돼 백사장에서 술판은 사라졌지만, 여름밤의 정취를 깨는 폭죽 발포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출입구에서 단속요원들이 눈에 보이는 폭죽은 가지고 들어가지 않도록 했지만, 단속요원이 바쁜 사이 폭죽을 들고 유유히 진입하는 젊은이들도 목격됐다.
이뿐만 아니라 인근 상점에서 폭죽을 사 가방 등에 숨겨온 젊은이들은 단속이 대수냐는 식으로 밤하늘을 향해 야간 발포를 감행했다.
해수욕장 곳곳에는 폭죽 사용 시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현수막이 게시돼 있어도 피서객들의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자정 무렵에도 백사장 저편에서 마치 콩을 볶는 듯한 폭죽 발포음이 들려오자 단속요원들은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