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산업기술 R&D 정책 좌담회'에서 나경환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장(왼쪽부터), 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이학성 LS일렉트릭 전력시험기술원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달 2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산업기술 R&D 정책 좌담회'에서 나경환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장(왼쪽부터), 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이학성 LS일렉트릭 전력시험기술원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산업기술 연구개발(R&D)에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정책 좌담회’에 참석한 산업기술 R&D 관련 민관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 관련 R&D 정책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좌담회에는 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나경환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장, 이학성 LS일렉트릭 전력시험기술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이 맡았다.

▶사회=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기술 R&D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커졌다. 국내 R&D 정책을 평가해달라.

▶김용래 실장=첫 번째로 유념해야 할 것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산업기술 R&D에 대한 투자가 꺾여선 안 된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 대중소기업 연구부서의 인력을 감축했다. 이게 몇 년 후 이공계 위기를 야기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수익이 당장 나지 않는 곳부터 예산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지난 5월 정부에서 제일 먼저 취한 조치가 기업들이 정부의 R&D 지원금을 인건비로 쓰도록 한 것이다. 기술료도 감면했다.

두 번째는 코로나19로 국제 사회의 산업 지도, 지형 자체가 바뀐다. 그레이트 디커플링이라고 하는 미·중 분쟁 구도가 지난 30년 동안 세계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산업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개방경제 국가로 수출로 먹고살던 나라다. 살아남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밸류체인의 스마일 커브를 위로 움직이는 것과 새로운 밸류 체인을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어려우면 전기차를 뚫으면 된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가 간에 의심의 장벽이 쌓이고 경제 민족주의가 강화될 것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기술이다. 다른 어느 때보다 R&D가 중요한 시점이다. 기업이 R&D에 대한 의욕을 꺾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나경환 단장=우리나라 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R&D 투자를 늘려왔고, 이를 통해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지금까지 R&D 투자는 추격형이었다. 추격형은 양적으로, 시간상으로 투자를 많이 하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외 환경이 바뀌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산업부에서도 R&D 혁신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추격형 R&D에서는 원천기술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앞으로 R&D 정책은 기업들이 원천기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제조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제조 전후의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그런 것까지 포함한 R&D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학성 원장=지난 30년 국내 R&D를 돌아보면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분야를 정해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민간기업이 해외 시장을 빠르게 따라잡는 데 정부가 많은 역할을 했다. 지난 40년 동안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완만하게 줄어왔고, 고용 창출 효과도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다. 더는 기존 방식으로 제조업에서 부가가치를 남길 수 없게 됐다. 갑자기 디지털 사회로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R&D 정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 마련됐다. 지난 30~40년 동안 제조 강국으로 성장하며 쌓은 자산을 잘 이용해 서비스 등으로 한 번 더 포장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정부가 이끌어줘야 한다.

▶사회=우리나라 R&D 투자는 OECD 국가 중 GDP 대비 1위인데 그 성과에 대해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경환 단장=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지표 관련 성과는 굉장히 높다. 그럼에도 R&D 성과는 낮다는 것은 많은 논문이 나오고 특허도 나오는데 기업에 이전도 안 되고 사업화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업화가 늦고 축약형 성장을 거치다 보니 양적 지표에 대한 성과를 중시했다. 지금부터는 퍼포먼스에 대한 성과를 어떻게 올릴 것인지에 대한 성과지표나 평가 관리체계가 주가 돼야 한다. 지금까지 R&D는 사실 연구 자체가 목표인 경우가 많았다. R&D를 하는 것은 그걸 통해 경제적·산업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인데 그러한 개념이나 접근 방법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개선하면 훨씬 더 많은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김용래 실장=스웨덴이 경험한 게 있다. 노벨상 수상자도 많이 나오는데 산업경제에 혁신이 없었다. 스웨디시 패러독스(스웨덴의 역설)다. R&D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도 스웨디시 패러독스가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R&D 투자 규모는 OECD 국가 중 5위다. 절대 금액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이다. GDP 대비로 보면 1위다. 연구인력도 38만 명으로 세계 6위다. 인구 만 명당으로 따지면 세계 1위다. 하지만 R&D 혁신역량은 OECD 국가 중 10위권에 그친다. 어느 때부터인가 정부의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는 R&D 부처가 총 35개 있다. 거의 모든 부처가 R&D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 예산은 20조원이 좀 넘는데 R&D 과제 수는 6만4000개에 달한다. 옛날에는 정부가 국가 R&D 전반을 다 끌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R&D 분야에서 연구비 늘었고, 참여하는 부처도 증가했다. R&D 관련 규정은 400여 개에 달한다. 엄청나게 복잡해진 상황이다. 정부 인력 1500명이 R&D 연구기관을 관리하고 있다. 도전·파격적이고, 모험적인 걸 R&D로 해야 하는데 안정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R&D는 관리형인 점, 안정 지향적 성향, 과도한 규제 이 3개를 우선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 R&D 성공률은 98%다. 성공할 것만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과제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러한 개선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

▶이학성 원장=추격형 R&D 시대에는 일단 공급을 하면 팔리니까 공급자 중심의 R&D를 많이 했다. 기업이든 국가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R&D를 한다. 기술 개발은 곧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기술만 개발했다고 성장이 보장되진 않는다. 기술 개발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R&D 과제를 성공했는데 시장에 내놓으면 안 팔리는 경우가 있다. 변화하는 산업환경에 대응해 자유롭게 목표설정을 바꾸는 `무빙 타깃` 방식을 하면 이러한 문제를 줄일 수 있다. 국가가 민간의 R&D 시스템을 무빙 타깃 방식으로 바꿔주고, 민간 연구자들의 자율성도 강화해줘야 한다. 국가는 민간 R&D를 믿어주되 만약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을 땐 징벌적 배상 등 전향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사회=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환경 변화가 R&D 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김용래 실장=R&D 방식이 바뀐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선 물성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신소재 등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한다. 우리도 기업이 가진 데이터를 잘 활용해 R&D를 하면 시간과 비용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다. 산자부는 R&D 정책 개편방향을 만들면서 이러한 점을 새 정책에 반영하려고 한다.

디지털전환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대폭 확대됐다. 디지털전환은 국제적인 R&D 사업을 벌여야 하는 정당성을 제공한 계기다. 폐쇄적인 R&D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힘들다. 한·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산업혁신기구 설립하고, ASEAN 국가들과 공동 R&D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 R&D를 대폭 늘려갈 방침이다.

서비스 분야의 R&D 강화도 요구된다. 우리나라 정부 R&D의 95%는 제조업이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제조업의 중요성은 비교적 축소됐다. R&D의 서비스화는 중요해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R&D 정책이 가져가야 할 것은 R&D의 디지털화, 국제화, 서비스화인 것이다.

▶나경환 단장=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잘해왔던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디지털화, 4차 산업혁명을 연계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제조 역량을 어떻게 디지털화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제조업 과정에서 전후 단계인 설계, 엔지니어링, 디자인 쪽에서 디지털과 연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산업 자체를 지능화하는 전략이다. 엔지니어링은 공정데이터나 제조데이터를 얼마나 가지느냐에 따라 성패가 나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축적된 노하우를 어떻게 분류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제조벤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제조벤처들이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서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학성 원장=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품은 철저히 개인 중심적으로 기획된다. 소비자들은 데이터에 기반을 둬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소비한다. 개인의 욕구는 다양해진 반면 가격 경쟁은 심화했다. 이런 걸 어떻게 충족할 것인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시사점 중 하나다.

과거 상품을 소유하는 것에서 이용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행태가 변화했다. 구독경제나 공유경제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하던 것들이다. 사람들이 원했던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서비스였다. 거기에 착안해 R&D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업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에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으로 R&D가 변화해야 한다. 다양한 기술을 창조적으로 조합해 각 사람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최근 대·중·소기업 생태계 간 경쟁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공장을 만들었더니 3분에 만들던 제품을 1분만에 만들게 됐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이 전산 인프라가 부족한 이유 등으로 여기에 대응을 못 한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잘 지원해줄까를 고민한다.

또 하나는 데이터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활용해야 하는 데이터가 전부 고립된 상태다. 국가는 데이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스마일커브에서 가치를 가장 많이 남기는 부분이 원천기술, R&D, 소재다. 제조 자체는 경쟁자가 쉽게 따라오는 탓에 부가가치가 가장 떨어진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면 스마일 커브 끌어올릴 수 있다. 아마존과 테슬라의 주가가 높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의문이다. 제품은 서비스 기반인데 제조 기반의 경험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주가가 높은 것은 전통제조업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제조 기반이 잘 다져진 우리나라가 원천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R&D를 한다면 다시 한 번 제조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애플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건 없다. 테슬라도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그런 글로벌 공룡기업들의 고민은 무엇인가?

▶이학성 원장=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가면 조립을 해서 부가가치를 남기는 게 비효율적인 게 된다. 그런 부분은 스마트공장을 통해 굉장히 효율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농업이 과거에 그랬다. 40~50년 전에 인구 60%가 농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5%도 안 한다. 제조도 방법론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R&D를 해줘야 한다.

▶김용래 실장=R&D는 제조, 서비스, 공정 분야로 나뉜다. 공정 R&D의 비중은 10%도 안 된다. 눈에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공정에서 일어난다. 뿌리 산업이라는 게 사실은 공정 기술이다. 공정 R&D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학성 원장=그게 받쳐주지 않으면 스마트공장은 외국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에만 그치게 된다.

▶사회=R&D 정책에서 민간과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용래 실장=거버넌스 문제는 정부와 민간의 문제, 주체에 대한 문제가 있다. 대·중소기업 주체 간 문제, 정부 주체 간 문제 등이다. 산업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에 거버넌스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 부처마다 지원하는 대상이 다르다. 산자부는 예산의 50~60%를 기업에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업 지원이 5% 수준이고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지원 비중이 높다. 거기는 돈을 넣어서 기술을 만드는 쪽이다. 산자부는 기술로 돈을 만드는 쪽이다. 중소벤처기업부로 넘어가면 거의 모든 R&D 지원이 기업이다. 이런 걸 총괄하는 정부는 부처, 지원 대상 마다 차별화된 규정을 가져야 한다. 전체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은 과기부에서 하고 있지만, 부처 간 특성을 반영한 관리체계를 가져가야 한다.

우리나라 박사인력 80%는 대학 연구소에 있다. 돈 80%는 대기업에 가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연구인력, 자금 모두 부족하다. 지금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이 가장 떨어져 있는 상태다. 중소기업들은 나 홀로 R&D를 하고 있다. 정부는 출연연, 대학과 중소기업을 연결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해외 연구소 등을 연계할 수도 있다.

▶사회=R&D 관련 정보 인프라가 유기적이지 못해 발생하는 비용도 클 것 같다.

▶이학성 원장=기업 내에 연구소가 여러 개다 보니 한 곳에서 몇 년 전에 했던 연구를 다른 곳에서 또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면 그러한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사회=중소기업을 위한 R&D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김용래 실장=한 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중소기업은 R&D 자원도 부족한 데다 새 상품을 개발해도 팔 데를 못 찾는다. 이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혁신조달` 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이 만든 기술 제품을 사주는 방식이다. 구매 조건부 사업도 있고. 한 해 조달 시장 규모가 100조원에 이르는데 이를 활용하면 중소기업 R&D를 지원할 수 있다.

▶이학성 원장=기업이 가장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입찰 경쟁 등에서 복수 업체가 아니면 안 되는 탓에 복수 업체 구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앞서 개발한 기업은 손해를 보게 된다. 특별히 유착관계가 있지 않다면 입찰 등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것에 대해선 징벌적 배상을 요구하면 된다.

과거처럼 R&D 정책을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하지 않고 시장에 맡겼으면 한다. 비즈니스 모델 개발은 민간에 맡기고, 국가는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서 민간이 잘 따라오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대기업 혼자선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생태계 구축은 대기업이 할 것이다. 다만 대기업이 2차, 3차 협력업체들까지 R&D를 지원하진 못한다. 거기까지 지원이 미쳐야 생태계가 잘 이뤄지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가 큰 데이터 레이크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민간기업이 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하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어떤 기술을 오픈 이노베이션 할 때 활용할 정보 창구를 저렴하게 제공해야 한다.

도전적인 제품들이 사업화되도록 국가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시장 독점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하기 보다 독점의 효과에 대한 신호를 줘야 한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클 땐 시간이 중요하다. 정부가 3년, 5년씩 로드맵을 만들어서 단계별로 평가하고 단계별로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나경환 단장=정부가 주도해서 민간을 끌고 가는 시대는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이 R&D를 더 잘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R&D는 선형적 개발 콘셉트를 가졌다. 사업화를 위해 데스밸리를 건너야 하는 게 당연시됐다. 이런 선형 모델의 R&D 개발 전략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기초 연구나 원천 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고 있다. 데스벨리라는 걸 만들어 놓고 건너야 하는 전략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데스밸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 민간이 가진 정보나 전략을 기업의 비밀을 보장하며 어떻게 발굴해서 정부가 지원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그게 어려웠다. 기업들이 핵심 전략은 노출을 잘 안 한다. 그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블록체인 등 보안기술이 많이 생겼으니 그런 걸 가지고 민간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전략기획단은 고민하고 있다.

산학연이 협력 체제여야 하는데 지금은 경쟁 체제로 돼 있다. 역할이 서로 다른데 최근 그 역할의 차이가 불분명해졌다. 기초부터 사업화까지 경계가 무너지듯 대학에서도 응용기술 등을 내놓는다. 정부는 산학연의 정체성에 걸맞은 R&D 펀딩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게 돼야 실질적인 협력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특정 과제에 대학들이 경쟁해서 가져가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사회=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시대다. 국가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R&D 사업이 갑자기 필요 없게 될 수도 있다.

▶김용래 실장=정부의 관리와 규제, 안정지향 R&D는 과거의 성공방정식이지 앞으로는 아니다. 연구자에게 자유를 주고 안정성보다는 도전, 모험 이런 걸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R&D는 연구자에게 모든 위험과 부담이 가는 구조다. 그게 연구자의 도전과 모험을 주저하게 한다. 개발하다가 목표가 바뀌면 그것 바꾸는 데만 1년이 걸린다. 굉장히 복잡하게 얽힌 규정도 많다. 산업부만 20개는 된다. 그래서 규제 샌드박스를 고민하고 있다. 일괄적으로 자율성을 주되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게 한다. 그런 걸 발표할 준비 중이다.

▶나경환 단장=불확실성이 클 때는 기본기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기본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기획이나 전략의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고 본다. 제일 중요한 게 글로벌 밸류체인 문제니까 단기적으로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접근 방법의 하나가 현재 가진 부품, 모듈 경쟁력을 분석해서 그것을 세계 1등의 밸류체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공장의 기본 취지는 `연계`인데 통합적인 연계를 통한 스마트공장 생태계가 중요하다. 소재, 부품, 장비 관련 핵심 부품이나 모듈을 만드는 중견기업도 생태계에서 중요하다.

▶이학성 원장=데이터가 매우 중요하다. 데이터는 유전(油田)이다. 데이터 관련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많이 투자해야 한다. 제조업을 농업처럼 포기하는 것은 큰 손실이다. 제조업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서비스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조업 플랫폼은 구글 같은 플랫폼 하나가 모든 고객을 사로잡는 게 불가능하다. 그 세계를 횡적으로 잘 채워줄 플랫폼이 여러 개 마련되길 기대한다.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면 필요할 때마다 요구사항을 더하고 수정하는 애자일 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시작은 작게 하라는 것이다. R&D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규제가 있고 경쟁자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국가도 계획을 한번 세웠다고 고집할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