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화장실 앞 근무' 등 차별…"동기에 참작할 사유 있다"
회사의 부당해고에 소송으로 맞서 복직한 직원이 인사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임원들의 메일 등을 몰래 열어봤다면, 이를 빌미로 다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최형표 부장판사)는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15년 회사 인력 감축 과정에서 희망퇴직 처리된 A씨는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으로 이듬해 복직했다.

2018년 그는 회사로부터 두 번째 해고를 당했다.

이번에는 징계해고였다.

공장 사무실에서 회사 고위 임원들의 ID와 비밀번호를 도용해 업무 시스템에 접속하고 결재문서와 이메일을 열어봤다는 것이 주된 징계 사유였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형사 재판에서 A씨의 이런 행위는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A씨에게는 벌금형의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다만 A씨는 "복직 이후 보복성 인사 등으로 고통을 받다 보니 부득이하게 생존을 위해 한 일"이라며 해고는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동기에 참작할 사유가 있다"며 이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A씨가 복직한 이후 화장실 앞에 책상을 마련해 근무하게 하거나 회의실에서 혼자 근무하도록 한 사례를 재판부는 근거로 들었다.

이례적으로 근무수칙에 서명하게 한다거나 직원이 아닌 외부인처럼 휴대전화 카메라에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한 경우도 거론했다.

회사는 복직자들에 대해 전보 인사를 단행한 뒤 트집을 잡아 징계해고하겠다는 내용의 '복직자 관리방안' 문서를 만들기도 했다.

재판부는 "복직 후 회사에서 받은 대우에 비춰보면,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A씨가 경험칙상 정상적으로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할 수 있다"며 "그런 사정이 A씨의 행위를 완전히 정당화하기는 어렵지만 귀책 사유가 전적으로 A씨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A씨의 비위행위는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회사가 A씨를 부당하게 배제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런 범죄를 다시 반복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가장 무거운 해고처분으로 대응해야 할 위험성이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단으로 들여다본 정보를 타인에 유출하거나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위행위 자체가 가볍지는 않지만, 회사 주장처럼 '중대한 범죄행위'인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한 재판부는 해고된 기간에 A씨가 받지 못한 급여 3천300여만원도 회사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