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창제도 폐지로 예방 효과 감소…교육 강화하고 징계 수위 높여야" 탐사보도팀 = 충동 성향이 강한 청소년기에 도박에 빠지면 성인이 된 후에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남성 대부분은 고교 졸업 후인 20대 초반에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청소년기에 시작된 도박 중독이 병영 생활 중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와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허용된 사병들의 휴대전화 이용이 중독을 더 깊게 하거나 새로운 중독을 일으키는 유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 생활관 내 도미노 감염…사병 7명 집단으로 중독 상담받아
육군 모 부대에서 복무하는 A(21) 상병은 최근 같은 부대원 7명과 함께 집단으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도박에 빠진 그는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되는 일과 후에 온라인 도박을 하기 시작했다.
A 상병이 스마트폰으로 도박하는 모습을 본 동료 부대원들도 하나둘 동참했다.
입대 후 생긴 나라사랑카드와 결제를 위해 만든 본인 명의의 계좌 덕에 온라인 도박 판돈 충전 비용 송금과 결제가 자유로웠다.
그는 이등병 때부터 받은 월급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한다.
가끔 돈을 따 목돈이 생기면 휴가 때 유흥비로 쓰고 남은 돈으로 또 베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유행으로 외출, 외박, 휴가가 모두 통제되면서 도박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고 한다.
온라인 도박에 빠진 A 상병과 동료들의 상황은 곧 간부의 귀에 들어갔다.
결국 부대에서 조사가 시작됐고 A 상병 등은 단체로 중독 상담을 받았다.
◇ 사병 휴대전화 사용 허용 후 도박 적발 급증…억대 도박 사례도
사병의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됐던 시절에도 드물지만 스마트폰을 숨겨두고 도박하다 적발된 사례는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도박을 했다는 김 모(25) 씨는 입대 당시 스마트폰을 두 대 들고 가 한 대만 제출하고 한 대는 개인 관물대에 숨겼다.
그리고 저녁 점호 후 스마트폰을 가지고 생활관 화장실에 숨어 도박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 역시 월급은 받는 족족 도박 자금으로 탕진했다.
군 복무 중 도박 적발 건수는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이후 확연하게 늘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도박으로 징계받은 병사 수는 2015년 569명, 2016년 493명, 2017년 509명, 2018년 498명으로 500명 안팎이었고, 사병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지난해에는 879명으로 급증했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모 부대 병사 5명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판돈 수억 원을 걸고 불법도박을 한 사실이 군 당국에 적발된 바 있다.
이 가운데 한명은 900여차례에 걸쳐 1억8천만원의 판돈을 걸고 도박했는데,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이후에는 생활관 내에서도 도박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 '복무 부적합' 전역 사례도 있어…"중독 방지 교육 및 징계 강화해야"
국방부는 병사들의 심리적 안정과 고립감 해소를 목적으로 지난 2018년 4월부터 육군 4개 부대를 대상으로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긴 했지만, 휴대전화 사용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달부터는 전면 허용했다.
휴대전화 허용 전에는 행정병들이 사무실 PC를 이용해 밤에 몰래 도박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경우 도박 사이트 접속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 있어 적발이 쉬웠다고 한다.
육군의 한 간부는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지 않을 때는 사이버지식정보방 컴퓨터로 도박을 하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있었고,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해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경우가 많아 도박 예방 교육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간부는 "부모님 카드 한도까지 다 써가면서 도박에 빠졌던 병사가 있었는데 지속적인 상담과 관리에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다른 병사에게 악영향을 줄 것 같아 결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전역시켰다"고 전했다.
도박 사실이 군 수사당국에 적발되면 징계를 받거나 입건된다.
한 군 법무관은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보통 판돈이 100만원 이상이면 입건한다.
판돈이 5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기소 유예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담솔의 홍승민 변호사는 "액수가 1천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정식 재판에 넘기고 그 이하인 경우에는 벌금형을 내리기도 한다"며 "재판을 받는 병사들을 포함해 징계는 모두가 받게 된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기존에는 보통 도박에 대한 징계가 영창(營倉, 징계 목적으로 군인의 신체를 일정 장소에 구금하는 처벌 또는 구금하는 장소)에 보내는 것이었다"며 "영창이 군기교육대로 바뀌었는데 영창에 보내는 것만큼 도박 예방 효과는 높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대 군사학과 이득운 교수는 "군에서 도박을 하다가 적발되는 병사들은 청소년기부터 중독된 경우가 많다"며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복무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영창(군 복무 기간이 연장되는) 제도를 없앤 대신 도박 횟수와 판돈 규모 등을 기준으로 외출·외박·휴가를 제한하거나 복무 기간을 연장하는 등 수위 높은 처벌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도박 중독 병사에게 도박은 반드시 적발된다는 인식도 심어줘야 한다"며 "도박 사이트 접속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도박 중독 피해자를 불러 경험담을 공유하는 등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