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베를린 필하모닉 정단원 비올리스트

비올리스트 박경민(30)은 지난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단원으로 입단했다.

약 2년간 수습 단원을 거친 후에 거둔 쾌거였다.

베를린 필 수습 단원은 통상 2년 정도 한다.

수습 중 정단원으로 승격하는 건 그중 절반도 안 된다.

박경민은 정단원이 됐을 뿐만 아니라 기간도 석 달 정도 단축했다.

광화문 한 카페에서 최근 연합뉴스와 만난 그는 "너무 신기하고 안 믿어졌다.

최근에야 정단원이 된 게 실감 난다"고 말했다.

베를린 필 정단원이 되려면 전 단원이 참여하는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그는 정단원이 된 작년 11월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오전 10시쯤 평가가 시작돼 연락을 받은 게 정오 무렵이었어요.

침대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요.

'떨어지면 다른 오케스트라를 알아봐야 하나?' 오디션을 다시 볼 생각을 하니 끔찍했죠. 그러다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
당시 베를린 필 단원이 되기까지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고 한다.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힘든 시절도 있었다.

그는 예원학교 1학년이었던 13세 때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재능을 남달리 본 학교 선생님은 그에게 조기 유학을 권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고심했고, 오스트리아 빈으로의 유학을 결정했다.

어린 동생이 있었기에 부모님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턱대고 떠난 건 실수였다.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객지 생활은 험했다.

독일어는 한마디도 못 했다.

힘들 때 하소연이라도 하면 응어리가 풀릴 텐데, 그의 말을 들어줄 부모도 곁에 없었다.

학교 아이들은 동양인 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사춘기는 일찍 찾아왔다.

"일탈도 많이 했어요.

연습도 잘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고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했어요.

'엄마 검정고시 봐서 한국서 대학 갈게'."
방황하는 나날은 계속됐지만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믿고 지지해줬다.

"선생님이 연습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재능 있는 걸 확신한다며 정 힘들면 한국에 돌아가도 어쩔 수 없지만, 조금만 더 참고 힘내자고 자주 말씀해 주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선생님께 정말 감사해요.

"
마음을 다잡은 그는 무서운 속도로 동료들을 따라잡았다.

17세에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 들어간 후 2008년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악원에 입학해 베를린 필 단원인 발터 퀴스너를 사사했다.

퀴스너의 권유로 그해 베를린 필의 객원 단원으로 참여해 첫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2013년 독일 최고 권위의 ARD 국제 콩쿠르에서 2위 및 청중상을 받았다.

그해 독일의 대표적 음악후원재단인 빌라무지카 독일음악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2016년까지 후원을 받았다.

2017년에는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 아시아 투어에 객원 단원으로 참여했으며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는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수석을 역임했다.

최연소 수석 자리를 박차고 그는 베를린 필 수습 단원에 도전했고, 약 2년 만에 베를린 필 정단원이 됐다.

"수습 기간이 힘들다고 말하는데, 사실 저는 어려서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때와 비교하면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정단원이 됐다고 크게 달라진 점도 없죠. 소득의 45%를 세금으로 내는 건 같고, 기본적으로 월급은 수습이나 정단원이나 차이가 없어요.

(웃음) 다만, 책임감은 조금 더 는 것 같아요.

"
베를린 필에 와서 좋은 건 명 지휘자들과 일상적으로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베를린 필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를 비롯해 크리스티안 틸레만, 주빈 메타,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레 가티, 사이먼 래틀 등 당대 최고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인상적이었던 지휘자는 가티에요.

그 어려운 힌데미트의 곡을 암보로 연주하더라고요.

박자도 까다롭고, 굉장히 무게감이 있는 곡인데, '저 어려운 곡을 어떻게 암보로 연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트렌코는 디테일에 굉장히 강했어요.

최근에 쿠렌치스가 베를린 필을 지휘했는데 논란이 있었지만, 저는 좋았어요.

"
그는 베를린 필과의 생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음악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정단원이 되면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래요.

베를린 필은 굉장히 경쟁적이고, 단원들의 실력이 모두 출중해요.

모든 게 기대했던 것 이상이에요.

여기 와서 더 잘 연주하고픈 욕망이 커졌어요.

제 음악의 깊이가 깊어졌으면 좋겠어요.

"
독일에서 돌아와 다음 달 10일 다시 출국하는 그는 오는 26일 경남 통영을 시작으로, 28일 서울 신영체임버홀, 다음 달 3일 주한독일문화원에서 리사이틀을 진행한다.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함께 브람스, 브루흐, 코다이의 비올라 곡을 연주한다.

그는 "코로나를 뚫고 오시는 관객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더불어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관객분들이 충족할 수 있는 연주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