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LG화학의 미국 ITC 제소로 시작…SK이노베이션도 맞소송
2월 ITC 조기 판결로 LG화학이 승기…10월 최종 판결 전 합의 가능성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벌이는 '배터리 소송전'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10월로 예정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에 앞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아직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물밑에서 탐색전을 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만 나온다.

두 회사의 소송에는 우리 정부, 미국 정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뜨거운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한미 양국서 진행중인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결말은
◇ 국내외서 소송전…미국 ITC서 LG 승소 예비 결정, 10월 최종 판결 앞둬
두 회사가 국내외에서 벌이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관련 법적 공방은 지난해 시작됐다.

1990년대부터 전기차 배터리 기술 개발에 나섰던 LG화학이 관련 인력을 빼가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미국 ITC에 제소했다.

그 다음 달에는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을 위반했다며 우리나라 경찰에 고소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SK이노베이션이 반격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법에 명예훼손 손해배상과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또 3개월 뒤에는 LG화학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 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LG화학은 9월 똑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맞소송으로 응수했다.

현재 국내외에서 여러 건의 소송이 걸린 가운데 LG화학이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지난 2월 ITC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는 예비 결정을 내렸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이의를 신청했으며, ITC는 리뷰(재검토)를 거쳐 10월 최종 판결을 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서 진행중인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결말은
ITC가 최종적으로 SK이노베이션에 패소 판결을 내리면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전기차 배터리 관련해 사실상 미국 내 공급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법조계와 업계에서는 ITC의 예비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서 SK이노베이션이 어떻게든 합의를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에 따르면 합의를 위한 협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양측 모두 계산기를 두들기며 상대의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타진하는 단계로 보인다.

한미 양국서 진행중인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결말은
◇ '그린뉴딜' 한국 정부·일자리 필요한 미국 정부 모두 촉각…완성차 업체 공방도
두 회사의 배터리 소송에 대해 우리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이 '그린 뉴딜'이고 '그린 뉴딜'의 중심에는 친환경 전기차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그린 뉴딜'이 힘을 받기 어렵다.

미국 정부의 고심도 크다.

LG화학은 미국 GM과 오하이오주에 배터리 합작사를,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각각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공장 건설에 조 단위로 투자 중이며, 일자리 창출 효과도 상당하다.

SK이노베이션이 최종 패소하면 조지아주 공장 건설과 미국 내 배터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를 원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SK 패소 판결 시 ITC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2010년 이후 ITC에서 완료된 소송 약 600건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애플과 삼성전자 간 특허권 침해 소송이 유일하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ITC 결정에 따른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LG화학 역시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회사라 미국 정부가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한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한미 양국서 진행중인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결말은
최근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까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소송전에 개입했다.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을 예정인 폴크스바겐(VW)과 포드는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의견을 ITC에 전달했고, 반면 LG화학과 합작사를 건설 중인 GM과 해당 공장이 들어설 오하이오주는 지적재산권이 지켜져야 한다며 LG화학 편을 들었다.

한미 양국서 진행중인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결말은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의견서가 ITC의 결정을 뒤바꿀 만한 변수는 되지 못하지만, 두 회사가 합의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영향은 있다고 본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LG화학은 합의가 급하지는 않지만, 시장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양국 정부와 완성차 업체들까지 주목하는 소송이 장기화하는 게 부담스럽다.

LG화학은 2월 ITC 판결 당시 "소송의 본질은 소중한 지적 재산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합의를 시도하고, LG화학은 보상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ITC의 최종 판결 전에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합의금이 조단위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양사의 입장차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본격적으로 협상이 개시되면 합의금 등 조건을 둘러싸고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상반기에 큰 폭의 적자를 봐서 합의금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안다"며 "협상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으며 합의가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