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란 전쟁터에 부대끼면서 생존한다~ 그게 오늘의 내 임무
‘나는 남자다’는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 최종 결승전에서 김희재가 부른 노래다. 그날 김희재는 검은색 전투화를 신고 무대에 등장했다. 어두운 붉은색 재킷 속에는 반짝반짝 윤기가 팔락거리는 셔츠를 받쳐 입었다.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은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戰士)의 결기로 세상을 향해 쏜 눈 총알같이 예리했다. 그날 방청객도, 시청자도 모두 노래 속의 화자처럼 ‘남자’가 됐다. 유행가의 마력에 빨려들었다.

‘오늘 하루 또 무사히/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부대끼면서 생존한다/ 그게 오늘의 내 임무다/ 간다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 또 하루 시작한다/ 내가 그동안 같이 못 간 세상과/ 다시 마주친다/ 난 나를 다시 툭 내려놓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거다/ 오늘 하루 또 무사히/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부대끼면서 생존한다/ 그게 오늘의 내 임무다.’(가사 일부)

이 노래는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멜로딩한 김진룡이 펼쳐 놓은 오선지 가락에 이건우(1961~,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가 노랫말을 걸쳤다. 노래의 모티브는 힘겨운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위무하는 에너지다. 세상에는 전쟁을 대비하면서 살아가는 직업인이 있고, 현실 생활을 전투하듯이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남자다’의 주인공은 후자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부대끼면서 생존한다. 그것이 저마다의 임무다.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전쟁터. 작사가 이건우는 어쩌자고 군사용어 임무(任務·mission)라는 단어를 유행가 가사로 들춰냈을까. 세상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의미리라. 노래 속의 화자는 “나는 화끈한 남자,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산다”고 절규한다. 힘겨운 오늘을 사는 대중에게 위로를 묵시적으로 드러낸다.

노래는 삶을 전쟁터에 비유했지만 인생살이는 절대적인 승리나 상대적인 항복으로 가름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이 우주다. 현실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생존이 목표인 사람도 있고, 어려운 과정을 살아내는 그 자체가 목표인 사람도 있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 출생의 김형석 교수는 그의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온 기간”이었다고 설파했다. 그러니 ‘나는 남자다’의 화자도 내일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이란 전쟁터에 부대끼면서 생존한다~ 그게 오늘의 내 임무
이처럼 세상에 살아남게 하는 물리적 수단은 무엇일까.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 양주 출생, 1807~1863)이 35년간의 유랑세월을 마감(전남 화순군 동복면 주막집에서 객사)한 뒤 남긴 ‘전 2수’(錢 二首, 돈에 관한 시)가 떠오른다.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도/ 누구나 너를 환영하고/ 나라도 가문도 흥하게 하니/ 너의 힘이 가볍지 않도다/ 갔다가도 되돌아오고/ 왔다가도 다시 나가며/ 살아서는 죽을 줄을 모르고/ 죽었다가도 다시 사는구나// 진실로 이것이 없으면/ 시종여일(始終如一) 힘을 못 쓰고/ 어리석은 이라도 이것을 잘 쓰면/ 반드시 이름을 떨친다/ 부자는 이것을 잃을까 두렵고/ 가난한 사람은 얻기를 원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 속에서 늙어 가는가.’ ‘나는 남자다’를 음유하는데 앞선 시대를 살다가 간 시선(詩仙)이 남긴 풍자시가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은 전쟁터인가.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