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이섬 고지대 농촌종합개발로 필리핀 ODA 최우수 사례 선정
생산-유통 인프라 구축으로 소득증대, "농업에서 희망 찾아"

[※ 편집자 주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보건·방역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은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자세로 국제개발협력(ODA)과 구호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수혜국에서 연대와 협력으로 지역민이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ODA 성공사례를 20일부터 매주 월요일 1회씩 총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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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韓ODA] ① 필리핀 농촌 자립·빈민 지원 '일석이조' 효과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 데 이제는 도시 빈민 구호 사업에 보탤 정도로 쌀 수확이 늘어 뿌듯합니다.

"
코이카는 17일 코로나19 탓에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도시빈민 17만명에게 쌀 200t을 긴급 지원했다.

코이카의 농촌종합개발사업으로 수확량이 늘어난 파나이섬 농민들로부터 이 쌀을 구매했다.

전달식에 참석한 파나이섬 지역 농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도움의 손길만 기다리던 빈농들이 이제 농업기업가의 꿈을 꾼다.

나만 잘사는 게 아니라 서로 도울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이같이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2018년 낙후된 농업의 희망을 보았다고 평가하며 이 사업을 해외 원조기관의 ODA 가운데 최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 2만여명 빈농, 가난의 대물림서 탈출

코이카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필리핀 7천여개 섬 가운데 6번째로 큰 파나이섬 4개 주의 고지대에서 650만 달러(78억원)를 들여 농촌종합개발 사업을 했다.

이 지역은 해발 500m 이상의 크고 작은 산과 구릉지가 대부분으로, 소수민족들이 경사지 농업으로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도로 등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농업이 낙후돼 있어 가난이 대물림되는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코이카는 지속가능한 농촌 개발 체제 구축을 위해 우선 고산지대 주민을 위해 식수 개발, 위생 화장실 보급 등 생활환경 개선을 추진했다.

2단계로 생산성을 강화해 소득을 증대하기 위해 선진 농법 전수·기계화·우량 종자 보급에 나섰고, 마지막 단계로 농산물의 판로 확보를 위해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금융체제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6개 군 6개 구간에 20㎞의 도로를 깔아 마을과 시장 간 직거래 통로를 만들고 산간계곡 2곳에는 물자수송을 위한 교량도 건립했다.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에 초등학교를 짓고, 100명의 농촌지도자를 대상으로 초청 연수도 실시했다.

이밖에 공동 퇴비 제조시설 1곳과 친환경 시범 농장 6곳, 특산품 지원센터 2곳을 건립하고, 각종 채소와 뿌리 작물 등 12가지 지역 특산품을 개발해 새로운 소득원도 만들어냈다.

필리핀 농업부는 ODA 최우수 사례로 선정하면서 "주요 농산물의 수확량 증대와 품질 향상으로 빈농 2만여 명의 소득이 늘어나 국제 기준 최저 빈곤율이 50%에서 30%로 줄어드는 성과가 났다"고 평가했다.

[코로나시대 韓ODA] ① 필리핀 농촌 자립·빈민 지원 '일석이조' 효과
◇ 농장에서 식탁까지 생산-소비 선순환

파나이섬 고지대 중 유통 환경이 열악한 산악지역에 150∼250㎡ 규모의 농산물 집하장 10동이 들어섰고, 각 군에는 코이카 제공으로 2.5∼4t 트럭과 유통 기자재도 갖춰졌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작물을 도시로 실어 나를 역량이 생기자 파나이섬 내 산미구엘의 파나이유통센터에 로컬푸드터미널과 로컬푸드센터도 생기게 됐다.

560㎡ 규모의 로컬푸드터미널은 파나이섬 고지대 11개 군의 농산물집하장 10동에 모인 농산물을 각 수요처로 효과적으로 유통시키고 섬 전체의 농산물 유통정보를 공유하는 허브의 기능을 하고 있다.

태양열 에너지를 활용한 냉장저장창고도 갖춰 농작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도 강점이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 현황에 따라 다른 지역보다 가격경쟁력도 높아졌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일괄 유통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로컬푸드센터는 농민들의 유통역량 강화 교육·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코이카는 자립 역량을 키우도록 운영을 농민조합과 협동조합에 맡기고 있다.

송민현 코이카 필리핀사무소 소장은 "중간 상인만 이득을 보던 후진적 유통구조가 개선돼 생산자는 기존보다 50∼100% 오른 금액으로 작물을 팔게 됐고 소비자는 신선한 작물을 30∼50% 저렴하게 구매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소개했다.

[코로나시대 韓ODA] ① 필리핀 농촌 자립·빈민 지원 '일석이조' 효과
◇ 자립 넘어 공생하는 농촌으로

농업분야 특화 국립대인 한경대학과 함께 추진한 이 사업의 3단계 기획은 지난해 8월로 모두 마무리됐지만 사후관리 체계도 구축됐다.

필리핀 농업부 산하 파나이섬 마케팅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농업부, 군 단위 지자체, 농민조합, 금융협동조합, 전문기관 등이 참여하는 이 위원회가 로컬푸드 유통시스템 발전과 농업 금융시스템 정착 지원을 맡게 된 것이다.

금융연계 로컬푸드마케팅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9개 지역 금융협동 조합이 참여하는 '로컬푸드촉진기금 운영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사업은 지난해 11월 국제기구인 IFAD(국제농업개발기금)의 지식나눔 포럼(KLMPE)에서 민관이 협력해 지속가능한 메커니즘을 구축한 대표적 농업거버넌스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올해 파나이섬 고산지대에서는 주요 작물 평균 생산량이 작년보다 100% 증가하고 농가 평균 소득이 74% 향상되는 성과를 냈다.

토비아스 지역의 로세니오 클라리토 씨는 "중간 상인의 마진 없이 바로 농작물을 로컬푸드터미널로 이동할 수 있게 돼 소득이 높아졌다"며 "자급자족만 하다가 이제는 '부농'의 꿈까지 생겼다"고 기뻐했다.

코이카는 도시빈민 긴급 식량 지원을 위해 이 지역의 쌀을 수매했다.

농민협동조합, 미곡종합처리장, 농산물 전용 유통시설을 활용해 수매 후 도정과 운송까지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 지원은 필리핀 정부로부터 원조 기관 중 국내 수매-국내 공급의 연결 고리를 만든 첫 사례로, 농촌과 도시 빈민이 서로돕는 모델이라고 평가받았다.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경제사회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사회 취약계층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주로 도시 빈민과 농촌 빈농"이라며 "이들을 동시에 돕는 사업으로 쌀 지원을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농촌개발 후속 사업으로 파나이섬 일로일로주를 농업 특화 지원 지역으로 선정해 스마트 농업 부문 지원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