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꿈많던 소년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뮤지컬 '제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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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서 초연…탄탄한 각본 빛나는 수작
어린 시절,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빨리 커서 멋있는 어른이 되길 바라지만, 정작 어른이 된 사람들은 안다.
어른이 되어도 별것 없이 흘러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뮤지컬 '제이미'는 "시간은 왜 이리 더디게만 흘러"라고 말하는 제이미와 "가슴에 굳은살만 자라나던 시절을 보낸" 엄마 마거릿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여기에 한창 꿈 많은 소년과 이제는 인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어른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다.
수업 시간에 교실 뒷좌석에서 공부는 뒷전이고, 공상만 하는 제이미. 이제 졸업이 눈앞이지만 진로는 정해지진 않았다.
적성검사를 하면 광부나 포크레인 기사가 나오지만, 결과가 마뜩잖다.
사실 하고 싶은 건 있지만, 하고자 할 용기는 없다.
어린 시절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에 맞춰 마돈나의 안무를 따라 했던 제이미는 화려한 무대에 서는 드랙퀸(여장 남성)이 되고 싶어 한다.
남들의 시선 탓에 우물쭈물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꿈을 응원한다.
"그 누구의 시선도 쓰지 말고 트럼프처럼 해"라고 말해주는 엄마 친구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드랙퀸 샵을 찾아간 제이미는 그곳에서 한때 '로코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업계를 평정했던 전설의 드랙퀸 휴고를 만난다.
뮤지컬은 오프닝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첫 곡 '앤 유 돈 이븐 노우 잇'(And You don't even know it)의 경쾌한 사운드, 합이 딱딱 맞는 군무, 적절하게 뒤섞인 남녀 코러스 합창은 눈길과 귓가를 자극한다.
귀에 꽂히는 넘버(노래)도 있고, 춤도 역동적이지만 무엇보다 '제이미'의 가장 큰 장점은 실화에 바탕을 둔 탄탄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은 작가의 애정이 깊이 배어 있는 캐릭터들로 구현된다.
예컨대 휴고는 마치 주성치(저우싱츠·周星馳) 영화에 나오는 오맹달(우멍다·吳孟達)처럼 이상한 행동과 감칠맛 나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준다.
오맹달이 그랬던 것처럼 휴고의 유머도 인생의 쓴맛에 발을 담그고 있다.
웃기면서도 슬픈 유머는 언제나 힘이 있기 마련이고, 휴고의 이런 유머는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제이미의 엄마 마거릿도 곡절이 많다.
스물한 살에 남자를 만나 제이미를 가졌지만 아이를 외면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을 대신해 엄마와 아빠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남다른 아이의 성향을 보면서도 묵묵히 그를 응원해 줬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제이미라는 밝은 빛을 보며 '성장하는' 이 여성도 따지고 보면 아직 마흔도 안 된 한창나이의 여인일 뿐이다.
이처럼 인생에서 실패를 맛본 휴고나 마거릿 같은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제 희망을 품고 사회로 진출하려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늘 우등생이지만, '처녀'라는 놀림을 당하는 제이미의 단짝 프리티는 명문대로 진학하고, 훌륭한 엄마를 뒀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제이미는 드랙퀸으로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선다.
하락과 상승이라는 인생 사이클이 맞물린 짜임새 있는 각본, 그런 각본을 토대로 무대 위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캐릭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필요한 시간, 그리고 그런 토대 위에 좋은 음악이 양념처럼 살짝 얹혔을 때, 뮤지컬은 가끔 마법을 부린다.
제이미가 집을 나간 후 마거릿이 담담하게 노래하다 절규로 마무리하는 '히 이즈 마이 보이'(He's my boy)가 흐를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자식에게 모든 정을 쏟았기에 이제는 화를 낼 마음조차 남아있지 않은 어머니의 심정이 절절히 묻어난 이 노래는 마법의 주문처럼 관객들을 옭아맨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뮤지컬계를 양분하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2017년 영국에서 초연됐다.
2018년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며 연출, 안무, 무대, 소품 등이 오리지널 작품과 동일한 라이선스 공연이다.
제이미 역에 조권, 신주협, MJ(아스트로), 렌(뉴이스트)이 캐스팅됐다.
마거릿 역은 최정원과 김선영이, 휴고 역은 윤희석과 최호중이 각각 연기한다.
9월 11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
관람료 6만~14만원. 공연 시간 2시간45분(인터미션 20분 포함). 중학생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어린 시절,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빨리 커서 멋있는 어른이 되길 바라지만, 정작 어른이 된 사람들은 안다.
어른이 되어도 별것 없이 흘러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뮤지컬 '제이미'는 "시간은 왜 이리 더디게만 흘러"라고 말하는 제이미와 "가슴에 굳은살만 자라나던 시절을 보낸" 엄마 마거릿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여기에 한창 꿈 많은 소년과 이제는 인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어른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다.
수업 시간에 교실 뒷좌석에서 공부는 뒷전이고, 공상만 하는 제이미. 이제 졸업이 눈앞이지만 진로는 정해지진 않았다.
적성검사를 하면 광부나 포크레인 기사가 나오지만, 결과가 마뜩잖다.
사실 하고 싶은 건 있지만, 하고자 할 용기는 없다.
어린 시절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에 맞춰 마돈나의 안무를 따라 했던 제이미는 화려한 무대에 서는 드랙퀸(여장 남성)이 되고 싶어 한다.
남들의 시선 탓에 우물쭈물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꿈을 응원한다.
"그 누구의 시선도 쓰지 말고 트럼프처럼 해"라고 말해주는 엄마 친구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드랙퀸 샵을 찾아간 제이미는 그곳에서 한때 '로코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업계를 평정했던 전설의 드랙퀸 휴고를 만난다.
뮤지컬은 오프닝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첫 곡 '앤 유 돈 이븐 노우 잇'(And You don't even know it)의 경쾌한 사운드, 합이 딱딱 맞는 군무, 적절하게 뒤섞인 남녀 코러스 합창은 눈길과 귓가를 자극한다.
귀에 꽂히는 넘버(노래)도 있고, 춤도 역동적이지만 무엇보다 '제이미'의 가장 큰 장점은 실화에 바탕을 둔 탄탄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은 작가의 애정이 깊이 배어 있는 캐릭터들로 구현된다.
예컨대 휴고는 마치 주성치(저우싱츠·周星馳) 영화에 나오는 오맹달(우멍다·吳孟達)처럼 이상한 행동과 감칠맛 나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준다.
오맹달이 그랬던 것처럼 휴고의 유머도 인생의 쓴맛에 발을 담그고 있다.
웃기면서도 슬픈 유머는 언제나 힘이 있기 마련이고, 휴고의 이런 유머는 이야기가 굴러가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제이미의 엄마 마거릿도 곡절이 많다.
스물한 살에 남자를 만나 제이미를 가졌지만 아이를 외면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을 대신해 엄마와 아빠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남다른 아이의 성향을 보면서도 묵묵히 그를 응원해 줬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제이미라는 밝은 빛을 보며 '성장하는' 이 여성도 따지고 보면 아직 마흔도 안 된 한창나이의 여인일 뿐이다.
이처럼 인생에서 실패를 맛본 휴고나 마거릿 같은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제 희망을 품고 사회로 진출하려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늘 우등생이지만, '처녀'라는 놀림을 당하는 제이미의 단짝 프리티는 명문대로 진학하고, 훌륭한 엄마를 뒀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제이미는 드랙퀸으로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선다.
하락과 상승이라는 인생 사이클이 맞물린 짜임새 있는 각본, 그런 각본을 토대로 무대 위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캐릭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필요한 시간, 그리고 그런 토대 위에 좋은 음악이 양념처럼 살짝 얹혔을 때, 뮤지컬은 가끔 마법을 부린다.
제이미가 집을 나간 후 마거릿이 담담하게 노래하다 절규로 마무리하는 '히 이즈 마이 보이'(He's my boy)가 흐를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자식에게 모든 정을 쏟았기에 이제는 화를 낼 마음조차 남아있지 않은 어머니의 심정이 절절히 묻어난 이 노래는 마법의 주문처럼 관객들을 옭아맨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뮤지컬계를 양분하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2017년 영국에서 초연됐다.
2018년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며 연출, 안무, 무대, 소품 등이 오리지널 작품과 동일한 라이선스 공연이다.
제이미 역에 조권, 신주협, MJ(아스트로), 렌(뉴이스트)이 캐스팅됐다.
마거릿 역은 최정원과 김선영이, 휴고 역은 윤희석과 최호중이 각각 연기한다.
9월 11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
관람료 6만~14만원. 공연 시간 2시간45분(인터미션 20분 포함). 중학생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