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성장통 겪는 소녀들에게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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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208쪽│1만1500원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208쪽│1만1500원
《82년생 김지영》으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소설가 조남주가 사춘기에 접어든 10대들의 우정과 사랑, 고민을 다룬 청소년 소설로 돌아왔다.
《사하맨션》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 《귤의 맛》(문학동네)은 숱한 햇볕과 바람을 들이고 맞으며 초록의 시간을 지나는 ‘덜 익은 귤’ 같은 인생을 사는 사춘기 소녀 네 명의 이야기다. 서로 전혀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살고 있는 소란, 다윤, 해인, 은지는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제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단짝 친구인 이들은 여행 마지막 날 밤 충동적으로 같은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약속을 한 뒤 그것을 타임캡슐에 묻는다.
소설은 이 약속을 둘러싼 네 소녀의 속사정을 번갈아 풀어놓는다. 작가는 각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그 주변 상황을 찬찬히 훑어 내려간다. 소란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절친과 갑작스럽게 관계를 끝내면서도 결국 위안받지 못한다. 가정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다윤은 학교 선생님의 기대와 호의를 저버린다. 은지는 친구들 무리에서 잘려 나간 아픈 기억을 갖고 있고, 해인은 갑작스레 무너진 집안과 더불어 대화가 되지 않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은 각자 미묘하지만 목소리를 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틈 속에서 현재 시간을 아프게 쌓아간다. 작가는 “알알이 맛과 향을 담뿍 채워가는 귤을 보면서 열매가 고된 시간을 거쳐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는 과정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청소년 문학 느낌을 주지만 누구나 사춘기를 겪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읽힌다. ‘나무에 매달린 채 햇볕을 받으며 끝까지 익은 귤과 아직 초록색일 때 가지가 잘려 남은 양분으로 자란 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라는 문장은 작은 생채기를 내면서도 저마다 초록의 시간을 지나 각자만의 ‘잘 익은 귤’이 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성장은 때때로 버겁고 외로운 일이지만 무책임하고 단순하게 ‘어차피 지나갈 일, 별것 아닌 일, 누구나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폄하하지 않았으면 했다”며 “소설을 통해 우리가 옛날에 힘들었던 것처럼 사춘기 세대들도 그렇게 지금 답답하고 힘들다는 것을, 말 못할 지금 그들의 삶도 그 자체로 무게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사하맨션》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 《귤의 맛》(문학동네)은 숱한 햇볕과 바람을 들이고 맞으며 초록의 시간을 지나는 ‘덜 익은 귤’ 같은 인생을 사는 사춘기 소녀 네 명의 이야기다. 서로 전혀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살고 있는 소란, 다윤, 해인, 은지는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제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단짝 친구인 이들은 여행 마지막 날 밤 충동적으로 같은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약속을 한 뒤 그것을 타임캡슐에 묻는다.
소설은 이 약속을 둘러싼 네 소녀의 속사정을 번갈아 풀어놓는다. 작가는 각 인물이 느끼는 감정과 그 주변 상황을 찬찬히 훑어 내려간다. 소란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절친과 갑작스럽게 관계를 끝내면서도 결국 위안받지 못한다. 가정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다윤은 학교 선생님의 기대와 호의를 저버린다. 은지는 친구들 무리에서 잘려 나간 아픈 기억을 갖고 있고, 해인은 갑작스레 무너진 집안과 더불어 대화가 되지 않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은 각자 미묘하지만 목소리를 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틈 속에서 현재 시간을 아프게 쌓아간다. 작가는 “알알이 맛과 향을 담뿍 채워가는 귤을 보면서 열매가 고된 시간을 거쳐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는 과정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청소년 문학 느낌을 주지만 누구나 사춘기를 겪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읽힌다. ‘나무에 매달린 채 햇볕을 받으며 끝까지 익은 귤과 아직 초록색일 때 가지가 잘려 남은 양분으로 자란 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라는 문장은 작은 생채기를 내면서도 저마다 초록의 시간을 지나 각자만의 ‘잘 익은 귤’이 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성장은 때때로 버겁고 외로운 일이지만 무책임하고 단순하게 ‘어차피 지나갈 일, 별것 아닌 일, 누구나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폄하하지 않았으면 했다”며 “소설을 통해 우리가 옛날에 힘들었던 것처럼 사춘기 세대들도 그렇게 지금 답답하고 힘들다는 것을, 말 못할 지금 그들의 삶도 그 자체로 무게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