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태풍 '차바' 때 함께 출동한 동료 죽음에 PTSD로 고통
극단적 선택한 공무원 위험직무순직 인정은 처음
인명 구조활동 중 눈앞에서 동료를 잃고 수년간 죄책감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등진 소방관이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았다.

인사혁신처는 20일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를 열어 울산소방본부 소속이던 고(故) 정희국 소방장의 위험직무 신청을 가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정 소방장은 2016년 태풍 '차바' 당시 구조 출동을 나갔다가 후배 고 강기봉 소방교가 급격히 불어난 물에 휩쓸려 사망한 뒤로 3년여 동안 죄책감이 시달리다가 지난해 8월 울산 한 저수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직무 수행 중 사망한 것이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에 대해 일반 순직이 인정된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험직무순직은 공무원이 생명과 신체의 고도 위험을 무릅쓰고 업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에 인정된다.

위험직무순직은 일반 순직보다 높은 수준의 유족보상금 및 연금이 지급된다
심의위원회는 정 소방장이 후배를 잃은 뒤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태풍 구조활동이라는 위험직무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판단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고인(정 소방장)이 수년간 PTSD로 한 달에 2차례꼴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았는데 위원회에서는 구조활동 중 동료를 잃은 것 외에 다른 원인이 없다고 봤다"며 "내일 중 유족과 울산소방본부로 위험직무순직 인정 사실을 정식 통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 소방장은 태풍 차바가 울산지역을 강타한 2016년 10월 5일 구조요청 신고에 후배인 강 소방교와 함께 울주군 회야강변으로 출동했다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렸다.

두 사람은 함께 전봇대를 붙들고 세찬 물살을 버텨내다가 그만 힘이 다해 급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정 소방장은 약 2.4㎞를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강 소방교는 이튿날 약 3㎞ 떨어진 지점의 강기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소방장은 아끼던 후배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자신에게 돌리면서 생전에 "나만 살아남아 기봉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지인들에게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심적 고통을 토로하는 메모도 남겼다.

그가 숨진 뒤 사물함에는 앞서 간 강 소방교의 근무복 상의가 함께 걸려있는 것이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정 소방장의 사례는 현장 활동 중 얻은 PTSD로 사망한 경우도 위험직무순직으로 폭넓게 인정한 것이어서 앞으로 유사한 사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선호 소방청 대변인은 "근무 중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는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얻은 정신적인 상처도 현장활동 중의 피해와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