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직후 전두환 만난 미대사 "全, 군부 장악에 美도움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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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기밀문건 공개…"12·12는 '젊은 투르크' 장교들의 쿠데타"
대통령 비서실장도 면담…"최규하, 군부 비판에 계엄령 완화 못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직후 주한미국대사와 면담에서 군부 내 반대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미 대사는 본국에 보낸 보고에서 전두환과 신군부를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하며 이들이 미국의 도움을 원한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당시 상황은 미국 국무부가 한국 외교부에 제공한 43건(약 140쪽 분량)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미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5·18 관련 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작년 11월 미 국무부에 자료를 요청했고, 이 자료는 1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공개됐다.
대부분 90년대 중반 기밀이 해제돼 부분적으로 공개된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가려진 곳 없이 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12·12 군사반란 직후 이뤄진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면담도 그중 하나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1979년 12월 14일 면담 내용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군의 분열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질 위험 등에 대해 경고했다.
이에 전 사령관은 자신의 행동이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려는 노력이며, 개인적 야심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정책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명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이 12·12 사태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으며, 이 사태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위험이 커진 것에 대해 매우 방어적으로 대응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어 "당연히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향후 몇주, 몇 달 간 매우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적었다.
전 사령관은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개입하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가벼운 형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경고했고, 이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부인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면담 전날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12·12 사태를 '젊은 투르크'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전날인 1980년 5월 17일에는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을 완화하고 새 정부 구성 등 정치 일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실장은 최 대통령이 며칠 내에 현 상황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군부가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온건적인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라 최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당일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면담했다.
이 사령관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령관은 최 대통령의 계엄령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대규모 학생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을 뺄 경우 북한의 공격 위험이 커진다는 주장이 그를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 대통령이 압력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엄령을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대통령 비서실장도 면담…"최규하, 군부 비판에 계엄령 완화 못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직후 주한미국대사와 면담에서 군부 내 반대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미 대사는 본국에 보낸 보고에서 전두환과 신군부를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하며 이들이 미국의 도움을 원한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당시 상황은 미국 국무부가 한국 외교부에 제공한 43건(약 140쪽 분량)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미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5·18 관련 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작년 11월 미 국무부에 자료를 요청했고, 이 자료는 1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공개됐다.
대부분 90년대 중반 기밀이 해제돼 부분적으로 공개된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가려진 곳 없이 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12·12 군사반란 직후 이뤄진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면담도 그중 하나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1979년 12월 14일 면담 내용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군의 분열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질 위험 등에 대해 경고했다.
이에 전 사령관은 자신의 행동이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려는 노력이며, 개인적 야심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정책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명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이 12·12 사태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으며, 이 사태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위험이 커진 것에 대해 매우 방어적으로 대응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어 "당연히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향후 몇주, 몇 달 간 매우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적었다.
전 사령관은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개입하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가벼운 형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경고했고, 이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부인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면담 전날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12·12 사태를 '젊은 투르크'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전날인 1980년 5월 17일에는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을 완화하고 새 정부 구성 등 정치 일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실장은 최 대통령이 며칠 내에 현 상황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군부가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온건적인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라 최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당일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면담했다.
이 사령관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령관은 최 대통령의 계엄령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대규모 학생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을 뺄 경우 북한의 공격 위험이 커진다는 주장이 그를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 대통령이 압력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엄령을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