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신비함으로 표현하고 싶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괴이한 움직임에서 오는 거대한 에너지…안무가 김보라 인터뷰
국제현대무용제서 안무가로, 무용수로 '1인 2역'
무대에 막이 오르면 귀기 서린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악기 소리가 들리지만, 연주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활은 중력을 저 홀로 견디며 허공에서 저 혼자만의 힘으로 움직인다.
볼륨이 조금씩 커질 때쯤 여성들이 등장해 춤사위를 펼친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짓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괴이한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현대무용 안무가 김보라(38)의 대표작 '소무'(2015)의 한 장면이다.
현대무용에서 '한류'를 논한다면 김보라라는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 2013년 자신이 창단한 프로젝트 무용단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통해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며 세계 무용계에 '인장'을 새겼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무', '꼬리 언어학'(2014), '무악'(2018)을 가지고서만 22개국에서 공연했다.
이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주 수입원도 해외 공연을 통해 거둬들인다.
"작년에만 10~12회 정도 공연했는데, 대부분 해외 투어로 거둔 수입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국내에서 연습한 후 해외에서 공연하는 패턴을 반복되고 있죠. 해외에 나가는 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해외에 나갑니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취소돼 수입이 없는 상태죠." 김보라는 지난 12일 서울 남산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하며 시원하게 웃었다.
김보라가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만들 당시 단원은 자신을 포함해 2명뿐이었다.
그해 요코하마 댄스 페스티벌 심사위원상을 받고, 현대무용계에서도 주목을 받으면서 단체의 덩치를 조금씩 키웠다.
현재 단원은 9명으로 늘었다.
공연이 끊이지 않아 공연료만으로도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쁜 해외 활동 때문에 국내 공연은 다소 등한시했던 그가 안무가로, 무용수로 국내 무대에 돌아온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 국제현대무용제(MODAFE)를 통해서다.
김보라는 자신이 재창작한 안무 '더 송'(The Song)을 선보인다.
무용수로서도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안애순이 안무한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에 출연한다.
'더 송'은 블루댄스씨어터의 대표 레퍼토리로,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그린 무용극이다.
기존 작품이 스토리에 치중했다면, 김보라가 재창작한 '더 송'은 텍스트, 노래 일체를 배제한 체, 움직임의 원형에 집중한 작품이다.
"캐릭터는 이름이 있고, 사회적 위치가 있고, 대사가 있죠. 한마디로 사회적 의미로 포장돼 있어요.
저는 다른 건 다 배제하고 몸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걸 그리고 싶었어요.
춤추는 감정, 몸의 구조, (동작이) 반복되면서 쌓이는 에너지 같은 걸 전달하고 싶었죠." 그의 춤은 괴상하다는 평을 받곤 한다.
확실히 고전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표현할 마땅한 형용사가 없을 정도로 기괴한 신체의 움직임은 호오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에너지를, 감정의 은밀함을, 언어의 폭력성을, 형식의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그의 춤은 꽤 근사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저는 기괴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신비함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기괴함이나 괴이함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하죠. 그건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낯선 아름다움일 거예요.
'더 송'에서도 무용수의 동작을 보면 괴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그는 지난 2017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를 통해 '100% 나의 구멍'이란 실험 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 달 반 동안 연습한 후 무대에 올라 정작 연습한 무용은 보여주지 않고, 연습하면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형식의 작품이다.
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등장 무용수와 안무가가 작업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무용 장르를 한 층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움직임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춤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토대로 했다.
"무용 개념을 확장하려면 방법을 깨야 했어요.
하지만 그 공연은 정말 괴로웠죠. 모든 것들이 즉흥적으로 이어지니까 저의 모든 허점이 드러났어요.
무용수들은 저를 당황하게 하기 위해 예측되지 않은 과감한 행동들을 마구 했어요.
저는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갔죠. '100% 나의 구멍'은 저의 허점을 지칭하는 거예요.
제 단점이 무대에서 드러났지만 그래도 가치 있었던 공연이라 생각합니다.
즉흥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찰나의 것들을 드러내죠."
새로운 춤을 지속해서 실험하는 그가 이번에는 영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댄스 필름 '초기화된 몸'을 만들 예정이다.
콘티와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배우로도 출연한다.
영화로 치면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셈이다.
"모든 춤은 저로부터 시작해요.
저의 상태나 기분, 사건이나 기억,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로 확장하게 되죠. 예술적으로는 새로움, 기괴함,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어요.
영화 작업도 그 일환이죠. 궁극적으로는 '작가주의'의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
국제현대무용제서 안무가로, 무용수로 '1인 2역'
무대에 막이 오르면 귀기 서린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악기 소리가 들리지만, 연주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활은 중력을 저 홀로 견디며 허공에서 저 혼자만의 힘으로 움직인다.
볼륨이 조금씩 커질 때쯤 여성들이 등장해 춤사위를 펼친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짓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괴이한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현대무용 안무가 김보라(38)의 대표작 '소무'(2015)의 한 장면이다.
현대무용에서 '한류'를 논한다면 김보라라는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 2013년 자신이 창단한 프로젝트 무용단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통해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며 세계 무용계에 '인장'을 새겼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무', '꼬리 언어학'(2014), '무악'(2018)을 가지고서만 22개국에서 공연했다.
이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주 수입원도 해외 공연을 통해 거둬들인다.
"작년에만 10~12회 정도 공연했는데, 대부분 해외 투어로 거둔 수입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국내에서 연습한 후 해외에서 공연하는 패턴을 반복되고 있죠. 해외에 나가는 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해외에 나갑니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취소돼 수입이 없는 상태죠." 김보라는 지난 12일 서울 남산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하며 시원하게 웃었다.
김보라가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만들 당시 단원은 자신을 포함해 2명뿐이었다.
그해 요코하마 댄스 페스티벌 심사위원상을 받고, 현대무용계에서도 주목을 받으면서 단체의 덩치를 조금씩 키웠다.
현재 단원은 9명으로 늘었다.
공연이 끊이지 않아 공연료만으로도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쁜 해외 활동 때문에 국내 공연은 다소 등한시했던 그가 안무가로, 무용수로 국내 무대에 돌아온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 국제현대무용제(MODAFE)를 통해서다.
김보라는 자신이 재창작한 안무 '더 송'(The Song)을 선보인다.
무용수로서도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
안애순이 안무한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에 출연한다.
'더 송'은 블루댄스씨어터의 대표 레퍼토리로,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그린 무용극이다.
기존 작품이 스토리에 치중했다면, 김보라가 재창작한 '더 송'은 텍스트, 노래 일체를 배제한 체, 움직임의 원형에 집중한 작품이다.
"캐릭터는 이름이 있고, 사회적 위치가 있고, 대사가 있죠. 한마디로 사회적 의미로 포장돼 있어요.
저는 다른 건 다 배제하고 몸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걸 그리고 싶었어요.
춤추는 감정, 몸의 구조, (동작이) 반복되면서 쌓이는 에너지 같은 걸 전달하고 싶었죠." 그의 춤은 괴상하다는 평을 받곤 한다.
확실히 고전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표현할 마땅한 형용사가 없을 정도로 기괴한 신체의 움직임은 호오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에너지를, 감정의 은밀함을, 언어의 폭력성을, 형식의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그의 춤은 꽤 근사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저는 기괴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신비함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기괴함이나 괴이함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하죠. 그건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낯선 아름다움일 거예요.
'더 송'에서도 무용수의 동작을 보면 괴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그는 지난 2017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를 통해 '100% 나의 구멍'이란 실험 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 달 반 동안 연습한 후 무대에 올라 정작 연습한 무용은 보여주지 않고, 연습하면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형식의 작품이다.
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등장 무용수와 안무가가 작업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무용 장르를 한 층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움직임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춤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토대로 했다.
"무용 개념을 확장하려면 방법을 깨야 했어요.
하지만 그 공연은 정말 괴로웠죠. 모든 것들이 즉흥적으로 이어지니까 저의 모든 허점이 드러났어요.
무용수들은 저를 당황하게 하기 위해 예측되지 않은 과감한 행동들을 마구 했어요.
저는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갔죠. '100% 나의 구멍'은 저의 허점을 지칭하는 거예요.
제 단점이 무대에서 드러났지만 그래도 가치 있었던 공연이라 생각합니다.
즉흥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찰나의 것들을 드러내죠."
새로운 춤을 지속해서 실험하는 그가 이번에는 영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댄스 필름 '초기화된 몸'을 만들 예정이다.
콘티와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배우로도 출연한다.
영화로 치면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셈이다.
"모든 춤은 저로부터 시작해요.
저의 상태나 기분, 사건이나 기억,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로 확장하게 되죠. 예술적으로는 새로움, 기괴함,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어요.
영화 작업도 그 일환이죠. 궁극적으로는 '작가주의'의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