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최대 300장까지 제작…"하나 가지면 하나는 남 줘야"
반평생 인천 거주…"동네 쉼터같은 수선집 계속 운영하고파"
[#나눔동행] 수제 마스크 1천300장 나눔…35년 베테랑 수선공
재봉틀이 '드르륵' 소리를 낼 때마다 사다리꼴 모양의 흰 원단은 끈 달린 마스크로 바뀌었다.

5분쯤 지났을까, 좁은 작업대 위에는 순면 마스크 5∼6장이 순식간에 쌓였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5동 공단시장에서 35년간 수선집 '왕이네'를 운영해온 베테랑 수선공 최인자(65)씨의 솜씨다.

24㎡ 남짓한 동네 수선집에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미칠 줄은 석 달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향인 경북 상주에 있던 최씨의 친언니는 2월 말 "마스크 구하기가 너무 힘드니 좀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최씨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동네 주민들에게 공짜로 마스크를 만들어준 기억이 있어 선뜻 수락했다.

늘 가던 서울 동대문 천 시장에서 원단을 떼 온 최씨는 색깔별·크기별로 마스크 300장을 만들었다.

[#나눔동행] 수제 마스크 1천300장 나눔…35년 베테랑 수선공
언니에게 주고도 남은 마스크는 동네 노인들에게 먼저 나눠줬다.

한창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질 때라 '왕이네 가면 마스크를 그냥 준다'는 입소문까지 났다.

기자와 인터뷰 중이던 7일 오전에도 단골손님이 들러 갓 만든 마스크 2장을 얻어가기도 했다.

최씨는 "동네 사람들이 와서 '여기가 마스크 주는 집이에요?' 하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고 그만큼 주곤 했다"며 "하루 최대 300장까지 만들어봤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12시간을 앉아서 마스크만 만들었다"고 웃어 보였다.

병원 여러 곳을 들렀는데도 마스크 한 장을 못 구했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한 할머니는 왕이네에서 80장이나 되는 마스크를 가져갔다.

최씨는 동 행정복지센터에도 필요한 주민들에게 나눠주라며 마스크 250장을 기부했다.

그렇게 그가 이웃들에게 나눠 준 수제 마스크는 1천300장이 넘는다.

원단 한 마에 마스크 16장이 나오니 무료 마스크 봉사에만 100마에 가까운 원단을 쓴 셈이다.

원단을 들치던 최씨는 "이게 아웃도어 원단이라고 값은 더 나가지만 숨이 잘 통하는 소재라 좋다.

공짜라고 아무렇게나 하려면 안 하는 게 낫다"며 "동네 길거리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내가 해 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걸 보면 그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마스크를 처음 만들 때부터 돈을 받고 팔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가져온 이들에게도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나눔동행] 수제 마스크 1천300장 나눔…35년 베테랑 수선공
최씨의 지론은 명확하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는 남에게 줘야 한다'는 것.
그는 "내가 바느질 수선해서 돈 버는 사람이지 마스크 팔아서 돈 버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그 사람들이 다 나 돈 벌게 해 준 사람들 아니냐"고 했다.

이어 "코로나19 때문에 일도 별로 없었다"며 "할 일 없으니 마스크도 만들고 오는 사람 주고 그렇게 한 거지 돈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38년 된 공단시장은 올해 말 재개발을 앞둬 빈 점포만 즐비하지만 최씨는 마지막까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대 때 노량진 의상실에서 처음 수선 기술을 배운 뒤 성남과 제주 서귀포를 거쳐 정착한 곳이기 때문이다.

반평생 살아온 주안동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수선집을 이웃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고 싶다는 게 최씨의 꿈이다.

[#나눔동행] 수제 마스크 1천300장 나눔…35년 베테랑 수선공
최씨는 "우리 식구 밥 먹고 살게 해 준 주안동에서 동네 사랑방처럼 쉼터 같은 수선집을 계속하고 싶다"며 "그때도 '왕이네' 간판을 크게 걸어놓고 계속 수선 일을 할 것"이라고 환히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