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과학자’로 불리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괴짜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가 48인치(121㎝) 드라이버 사용을 공언하고 나섰다. 드라이버 길이를 늘려 헤드 스피드를 빠르게 해 비거리를 더 늘리겠다는 의도다.

클럽 길이가 길어지면 실제로 비거리가 늘어날까. 클럽이 길어지면 두 가지 상반된 효과가 발생한다. 우선 스윙 아크가 커짐에 따라 헤드 스피드가 늘어난다. 우원희 핑골프 테크팀 부장은 “드라이버 길이를 1인치 늘리면 헤드 스피드는 1.4마일 빨라지고 비거리는 4야드 늘어난다는 실험 데이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길이와 함께 커지는 샤프트 무게와 헤드 저항은 비거리에 악영향을 끼친다. 물리학자인 리처드 그레이그의 연구에 따르면 두 가지 효과를 고려할 때 최적의 거리를 낼 수 있는 클럽 길이는 50.1인치(128㎝)다. 디섐보의 48인치는 아직 이론적 비거리 증대 유효구간에 있는 셈이다.

디섐보도 덩치를 키워 저항을 이겨낼 준비를 마쳤다. 그는 데뷔 때보다 24.5㎏이나 무게를 늘리면서 근력을 강화했다. 평범한 길이의 클럽으로는 큰 효과도 봤다. 그는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드라이버 비거리(321.3야드) 1위에 올라 있다.

문제는 48인치에서의 정확성이다. 드라이버 헤드가 몸에서 멀어질수록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위트스폿에서 1인치 벗어난 지점으로 공을 때리면 20야드의 비거리를 손해 본다. 디섐보도 “48인치 클럽에 완벽하게 적응하기 전에는 45.5인치 길이 드라이버를 쓸 것”이라고 했다.

만약 디섐보가 앞으로 비거리 향상을 위해 50.1인치 클럽에 도전할 수 있을까. 정답은 ‘노(no)’다. 비공인 장타대회 출전이라면 모를까 정규 대회에선 불가능하다.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2004년부터 클럽 길이와 헤드 체적 등에 관한 규정을 도입했기 때문. 이때 정해진 클럽의 최대 허용치가 48인치다. 길이뿐만이 아니다. 헤드 표면의 반발계수는 0.83 이하로, 체적은 460㏄ 이하로 정해졌다. 반발계수가 0.01 높아지면 2야드 이상 거리가 느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드 체적이 커지면 무게중심이 낮고 관성모멘트가 커져 관용성이 좋아진다.

협회의 ‘규제화’ 움직임은 용품 발달과 연관이 깊다. 2000년 캘러웨이가 들고나온 반발계수 0.87의 ERC 드라이버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안니카 소렌스탐 등 이 드라이버를 쓴 여자선수들의 비거리가 300야드가 넘어가자 협회가 제동을 걸었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400야드가 넘는 선수들이 나타나면 전통적인 코스에서 골프 경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협회 판단이었다.

이후부터는 거리를 놓고 코스와 선수 간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실제로 마스터스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의 골프코스 전장은 2000년대 비거리 혁명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2000년 전장 6985야드로 치러졌던 마스터스는 지난해엔 7475야드로 500야드 가까이 길어졌다.

선수들의 평균 비거리도 자꾸만 늘어나는 추세다. 장비와 용품으로는 거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규정이 바뀌자, 골퍼들이 ‘자신의 몸’을 단련하며 경쟁을 거듭한 결과다. 이제는 규제의 칼끝이 선수들의 몸으로 향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