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해고하려면 50일전 통보해야…英·佛 '경영난 예방' 정리해고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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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과보호' 낡은 노동법
美는 정리해고 제한 아예 없어
국내기업, 저성과자 해고 불가능
계약·파견직 등 비정규직만 늘려
美는 정리해고 제한 아예 없어
국내기업, 저성과자 해고 불가능
계약·파견직 등 비정규직만 늘려
“호봉제 임금체계는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확대하고 노동시장 경직성을 강화하고 있다. 호봉제 폐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지난해 5월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주제강연을 통해서도 밝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즉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으로 호봉제를 지목한 것이다. 하는 일에 상관없이 연차가 거듭될수록 임금이 자동적으로 오르는 호봉제는 양극화뿐만 아니라 고용시장을 경직시키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심화된 데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강력한 노조 영향도 있지만 법·제도 측면에서 정규직을 과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경영난에 처해 인력을 감축해야 할 경우에 한해 ‘정리해고(경영상 해고)’ 조항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사용자는 휴직 조치 등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해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을 정해 대상자를 선정하며, 해고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노조에 통보해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4조)고 명시돼 있다. 또 정리해고 이후 노사 간 다툼이 발생한 경우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모든 입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 해고보다는 계약직 또는 파견·도급과 같은 ‘비정규직 활용’을 늘리는 게 현실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초유의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지만 기존 판례대로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정리해고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규직에 대한 지나친 보호가 오히려 취약근로자를 더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노동법과 달리 미국, 유럽 등에서는 정리해고와 관련된 법·제도가 비교적 유연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정리해고 요건과 관련한 제한이 아예 없다. 대량해고 시 해당 근로자와 행정기관에 통보만 하면 된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장의 경영난이 없더라도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예방 차원의 정리해고도 가능하다.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해고 요건으로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판단은 법원이 하도록 돼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경영상 해고와 관련해서는 ‘경제적, 기술적, 구조적 또는 이와 유사한 사유로 근로자와의 고용관계를 유효하게 종료시킬 수 있다’(제158호 협약)고 명시하고 있다.
한 기업체 인사담당 임원은 “코로나 사태 속에 미국과 유럽에서 실직자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해고가 용이하기 때문”이라면서도 “반대로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다시 고용시장에 돌아오는 속도도 매우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지난해 5월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주제강연을 통해서도 밝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즉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으로 호봉제를 지목한 것이다. 하는 일에 상관없이 연차가 거듭될수록 임금이 자동적으로 오르는 호봉제는 양극화뿐만 아니라 고용시장을 경직시키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심화된 데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강력한 노조 영향도 있지만 법·제도 측면에서 정규직을 과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경영난에 처해 인력을 감축해야 할 경우에 한해 ‘정리해고(경영상 해고)’ 조항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사용자는 휴직 조치 등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해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을 정해 대상자를 선정하며, 해고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노조에 통보해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4조)고 명시돼 있다. 또 정리해고 이후 노사 간 다툼이 발생한 경우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모든 입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 해고보다는 계약직 또는 파견·도급과 같은 ‘비정규직 활용’을 늘리는 게 현실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초유의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지만 기존 판례대로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정리해고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규직에 대한 지나친 보호가 오히려 취약근로자를 더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노동법과 달리 미국, 유럽 등에서는 정리해고와 관련된 법·제도가 비교적 유연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정리해고 요건과 관련한 제한이 아예 없다. 대량해고 시 해당 근로자와 행정기관에 통보만 하면 된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장의 경영난이 없더라도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예방 차원의 정리해고도 가능하다.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해고 요건으로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판단은 법원이 하도록 돼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경영상 해고와 관련해서는 ‘경제적, 기술적, 구조적 또는 이와 유사한 사유로 근로자와의 고용관계를 유효하게 종료시킬 수 있다’(제158호 협약)고 명시하고 있다.
한 기업체 인사담당 임원은 “코로나 사태 속에 미국과 유럽에서 실직자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해고가 용이하기 때문”이라면서도 “반대로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다시 고용시장에 돌아오는 속도도 매우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