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감독관, 매교시 응시원서 들고 수험표·신분증 비교 확인
감독관 교시별로 교체하게 돼 있어…정시 확대한 교육부 '당혹'
15년만의 '수능 대리시험' 어떻게 가능했나…감독관 여럿 속여
현역 병사가 선임병의 부탁을 받고 작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대리 응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수능 감독 체계에 대한 불신이 고조될 전망이다.

9일 군 당국에 따르면 공군 모 부대에 근무하는 A 병사는 작년 11월 14일 서울 시내 한 수능 고사장에서 당시 선임병(현재 전역) B씨를 대신해 수능을 치렀다.

수험표에는 A 병사가 아닌 B씨의 사진이 붙어 있었지만, 시험 감독관의 신분 확인 절차에서 적발되지 않은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됐다.

이 때문에 수능 부정행위 감독 체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A 병사가 치른 2020학년도 수능의 '대리시험 및 부정행위 방지' 세부계획을 보면, 수험생은 수능 응시원서를 낼 때 여권용 규격 사진을 2매 함께 제출해야 한다.

사진은 원서 접수일 기준 6개월 이내에 촬영된 천연색 상반신 정면 사진이어야 한다.

머리카락·안경테 등으로 눈을 가리거나 모자 등으로 머리를 가리면 안 된다.

이 사진 2매 중 1매는 응시원서에 부착되고, 1매는 수험표에 부착된다.

응시원서는 학교 등 접수처에서 고사장 감독관에게 바로 전달된다.

수험표는 예비소집 때 수험생들이 받아서 수능 당일에 들고 간다.

수능 날 수험생들은 책상 위에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올려놓아야 한다.

감독관은 해당 고사장 수험생들의 응시원서를 묶은 서류철을 들고 다니면서 수험생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수험표, 신분증과 비교한다.

응시원서, 수험표, 신분증 등 세 가지를 모두 비교 확인해 수험생 본인이 맞는지 점검하게 돼 있다.

이 작업은 매 교시 시작 전에 반드시 하도록 규정돼있다.

아울러 1교시 국어 영역과 3교시 영어 영역 전 쉬는 시간은 '본인 확인 시간'으로 따로 설정해 사진을 더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대리시험을 감행한 A 병사가 B씨 사진이 붙은 수험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감독 체계를 피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5년만의 '수능 대리시험' 어떻게 가능했나…감독관 여럿 속여
대신 A 병사가 B씨와 닮아 보이도록 일종의 변장을 해 감독관 눈을 속였거나, 해당 고사장 감독관이 본인 확인을 부실하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A 병사가 눈을 속인 감독관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데 있다.

수능 시험실당 감독관은 2명(탐구영역 때는 3명)이고, 교시별로 교체하게 돼 있다.

시험 관리의 공정성을 위해 한 감독관은 매 교시 다른 고사장에 들어가야 하며, 전체 5교시 중에 최대 4교시까지만 들어가야 한다.

이에 따라 A 병사가 시험을 치렀던 고사장에 감독관으로 들어갔던 교직원 전원이 감독 부실 책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군사경찰은 우선 A 병사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대가성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전역한 B씨도 서울시교육청이 경찰에 고발해 조사를 받게 됐다.

수능 대리시험이 적발된 것은 2004년 11월 치러진 2005학년도 수능 이후로 15년 만이다.

당시 범인들은 특정 과목을 잘하는 '선수'가 휴대전화를 숨기고 들어가 정답 번호만큼 휴대전화 숫자를 두드려 바깥의 '도우미' 후배들에게 답을 보내면, 이들이 다른 부정 응시자들에게 답안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범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지금의 부정행위 방지 체계를 만들었다.

모든 전자기기를 반입 금지하는 한편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샤프 등 필기도구도 고사장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대입 공정성을 강화한다면서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모집(수능 위주 전형) 비율을 현재 29%에서 40%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교육부는 수능 대리시험 사건에 당황한 모양새다.

교육부 관계자는 "우선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감독관의 과실인지, 감독 체계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는지 살펴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