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유일 제조생태계 갖춰…PMIC·코인셀로 애플 추격
후발주자 삼성이 애플 아이폰을 제치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선 스마트폰에 이어 정보기술(IT) 업계 새 먹거리인 무선이어폰에서도 에어팟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달 말 선보인 하만 무선이어폰 'AKG N400' 사전판매를 이달 15일까지 진행한다. 같은달 갤럭시버즈 플러스를 출시한 삼성이 삼성 브랜드가 아닌 AKG로 무선이어폰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N400에는 애플 에어팟 프로의 최대 장점인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NC)이 삼성 최초로 탑재됐다.
주변 소음을 차단해 음향 청취효과를 극대화, 이용자 반응이 좋은 ANC 기능은 갤럭시버즈 시리즈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음향기업으로서의 전문성이 강점인 하만 AKG 브랜드 무선이어폰에 이 기능을 탑재, 에어팟 시리즈와 대등하게 겨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단 평가다. 무선이어폰 시장은 애플이 독주하는 가운데 샤오미와 삼성전자가 뒤쫓는 형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무선이어폰 시장점유율은 애플이 54.4%로 압도적 1위였다. 샤오미(8.5%)와 삼성전자(6.9%)가 격차가 큰 2·3위로 추격을 시작했다.
애플에 한참 뒤처진 결과지만 삼성이 무선이어폰 시장 진출 약 8개월 만에 700만대가량 판매한 것은 고무적인 성적표다. 삼성이 갤럭시버즈를 내놓은 건 에어팟 출시 3년 뒤였다. 무선이어폰 판매를 유도할 수 있는 이어폰 단자 미탑재 스마트폰 갤럭시노트10도 지난해 10월에야 나왔다.
업계에선 삼성이 무선이어폰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자급 가능한 제조 생태계를 갖춘 유일한 기업이란 점을 최대 강점으로 꼽는다. 무선이어폰용 통합 전력관리칩(PMIC)이 대표적 사례. 크기가 작으면서도 사용시간이 오래 지속되는 무선이어폰을 만들기 위한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업계 최초로 여러 개별 칩을 하나로 통합해 회로 기판 크기를 절반 이하로 줄이면서도 대용량 배터리를 구현할 수 있는 PMIC칩 'MUA01'(충전 케이스용)과 'MUB01'(이어폰용)을 선보였다. 이 칩은 갤럭시버즈 플러스에 탑재됐다.
삼성SDI는 무선이어폰용 배터리에서 대세로 통하는 '코인셀'을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다. 갤럭시버즈 플러스에도 장착된 코인셀은 에너지 밀도가 다른 배터리에 비해 높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무선이어폰 배터리 시장에서 코인셀이 57%를 점유해 기존 1위였던 핀셀(18%)을 크게 앞질렀다.
프리미엄 오디오 전문인 자회사 하만은 삼성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최고급 음향 기술을 자랑하는 하만은 무선스피커 시장에서 5년째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퓨처소스에 따르면 TV와 연결하는 삼성 사운드바는 지난해 2위 업체와의 간격을 전년보다 벌리며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21.8%)를 굳건히 했다.
갤럭시버즈 시리즈에도 하만 오디오 브랜드 AKG가 탑재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버즈 플러스의 장점 중 하나로 음향 기술을 꼽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여기에 하만 AKG가 별도로 무선이어폰을 출시하면서 에어팟 협공이 가능해졌다. 무선이어폰은 전년 대비 90% 이상 성장할 정도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전사적 노력을 기울여 과거 업계 1위 소니를 제쳤던 경험을 되살린다는 복안이다. 배터리 용량, 음악 재생시간, 통화시간, 급속충전, 음질 등 전반적 성능을 크게 개선한 갤럭시버즈 플러스와 함께 ANC를 탑재하면서도 배터리가 에어팟 프로보다 대용량인 AKG N400을 선보였다.
소비자 취향에 따라 선택폭도 넓히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단 무선이어폰 시장이 커지는 만큼 시장경쟁도 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3위 애플 샤오미 삼성전자 외에도 화웨이 아마존 소니 LG전자 등이 진출해 있고, 올 상반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무선이어폰을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무선이어폰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노이즈캔슬링 전력반도체 코인셀배터리"라며 "애플이 당분간 공고한 시장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삼성전자 화웨이 구글 아마존 등 후발주자들 가세로 기술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