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 여성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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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섹터 논픽션 '지옥에서 온 여왕' 번역 출간
1908년 4월 27일 미국 인디애나주 평화로운 시골 마을 라포르테의 한 농장에 딸린 주택에서 불이 났다.
새벽녘 매캐한 연기에 잠을 깬 일꾼이 불이 난 것을 보고 이웃에게 알렸고 황급히 달려 나온 주민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집은 완전히 완전히 타 버렸다.
현장을 수습하던 당국자들과 주민들은 불타 버린 잔해 속에서 서로 뒤엉킨 채 숨진 시신 4구를 발견했다.
시신들의 모습을 볼 때 두 번의 사별 끝에 세 아이와 살던 여자 농장주 벨 거너스가 불이 나자 아이들을 꼭 안고 어떻게든 불길을 피해 보려다 함께 숨진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거너스의 시신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가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 신문들은 '불길도 두려워하지 않은 숭고한 모정' 따위의 제목을 단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화재 사건이 미국 역사상 여자가 저지른 최악의 연쇄살인을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연쇄살인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국 논픽션 작가 해럴드 섹터가 쓴 '지옥에서 온 여왕'(원제 Hell's Princess·알마)'은 전설이 돼 버린 '살인 농장'과 그 속에서 벌어진 잔혹한 범죄, 그리고 끝내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에 관한 이야기다.
화재 사건은 농장의 여주인과 결혼하겠다며 사우스다코타주에서 라포르테의 거너스 농장으로 간 이후 연락이 끊긴 앤드루 헬길리언을 찾기 위해 동생이 농장을 찾으면서 급반전한다.
뭔가 미심쩍었던 헬길리언의 동생은 처음 화재를 신고했던 일꾼이 거너스의 지시에 따라 구덩이를 파고 쓰레기를 묻었다는 곳을 파헤쳤고 거기서 마대 속에 든 사람의 목과 잘려 나간 팔을 발견했다.
곧 보안관과 검시관이 출동했고 범위를 넓혀 수색한 결과 성인 남자 두 명, 성인 여자와 여자 청소년 각 한 명 등 모두 4명의 시신이 더 발견됐다.
시신은 각각 6개 부위로 절단된 상태였다.
농장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음이 분명해졌고 당국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연쇄살인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때에 일어난 이 사건은 라포르테는 물론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거너스의 수상쩍은 행적이 잇따라 드러났다.
1859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거너스는 1881년 미국으로 이주해 먼저 시카고에 정착해 있던 언니 부부와 합류했다.
이민 전과 마찬가지로 허드렛일을 하며 빈곤하게 지내던 거너스는 3년 뒤 결혼하지만 1900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당시에는 거액인 5천 달러의 보험금을 받게 된다.
기막히게도 두 건의 보험 적용 기간이 겹치는 날이 단 하루 있었는데 남편이 마침 그날 세상을 떠나 보험금을 이중으로 타낼 수 있었다.
그 사이 농장이 딸린 주택을 사들여 라포르테로 이사한 거너스는 1902년 두 번째로 결혼했지만 식을 올린 지 닷새 뒤 남편이 데리고 온 생후 7개월짜리 의붓딸이 숨진 데 이어 8개월 뒤에는 남편마저 사망하게 된다.
거너스는 새 남편이 찬장에서 떨어진 고기 분쇄기에 머리를 맞아 다친 후 거실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했는데 어느 순간 살펴보니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살인 혐의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지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무혐의 종결됐고 두 번째 남편이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식 앞으로 든 생명보험의 보험금 2천 달러의 행방도 묘연했다.
진짜로 의심스러운 거너스의 행각은 두 번째 남편이 사망한 이후 시작된다.
노르웨이계 이민자들이 주로 보는 신문 등에 '반려자를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 찾아오는 남자들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를 시작하지만, 남자들은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거너스는 이렇게 끌어들인 남자들에게 한결같이 "있는 재산을 모두 처분해 현금으로 갖고 올 것"과 "주변에 이 사실을 절대로 알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앤드루 헬길리언도 이런 과정을 거쳐 거너스의 농장에 왔다가 실종된 것이다.
거너스의 드러난 행적과 농장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명백히 그가 연쇄살인을 저질렀음을 가리켰다.
남은 문제는 희생자가 더 있느냐는 것이었다.
경찰이 다시 수색에 나섰고 땅에 묻힌 시신들이 또 발견됐다.
피살자는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헬길리언과 서부의 대학을 다닌다던 거너스의 의붓딸 제니 올슨 등 일부 피해자는 신원도 확인됐다.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거너스의 농장을 찾았다가 실종된 남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역 경찰은 거너스 가족 살해 용의자로 한때 거너스의 정부이자 일꾼이었던 레이 램피어를 체포했지만 많은 사람은 현장에서 발견된 목 없는 시신은 거너스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갖다 놓은 다른 사람의 것이며 그는 살아서 어디론가 도망쳤을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기술로는 시신의 정확한 신원을 밝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상호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여러 증언과 증거, 황색 언론의 추측 보도가 난무한 가운데 배심원은 램피어의 살인 혐의는 무죄, 방화 혐의는 유죄라는 모호하고 타협적인 평결을 내놓고 이에 근거해 판사는 단기 2년, 장기 21년 징역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살인 현장에 살인과 무관한 사람이 불만 질렀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되지 않는 판단이었다.
램피어가 형량의 최저한도도 마치기 전에 옥중에서 사망하면서 사건의 진상은 더는 밝혀지기 어려운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는 증언이 나오는가 하면 정반대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이나 살아있는 거너스를 봤다는 신고가 전국 각지에서 잇따랐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100년 이상 의혹으로 남은 이 사건의 진상을 가리기 위해 2008년에는 시카고 공동묘지에 안치된 목없는 시신의 DNA를 조사하기도 했지만, 검사 결과는 '불확실'이었다.
저자도 온갖 기록을 뒤져가며 조사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거너스의 미스터리는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겠지만 그 구상이나 희생자들을 처형하는 잔혹한 방식이 도저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거너스는 충분히 '21세기의 대악마'로 불릴 만하다"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김부민 옮김. 488쪽. 1만7천원. /연합뉴스
1908년 4월 27일 미국 인디애나주 평화로운 시골 마을 라포르테의 한 농장에 딸린 주택에서 불이 났다.
새벽녘 매캐한 연기에 잠을 깬 일꾼이 불이 난 것을 보고 이웃에게 알렸고 황급히 달려 나온 주민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집은 완전히 완전히 타 버렸다.
현장을 수습하던 당국자들과 주민들은 불타 버린 잔해 속에서 서로 뒤엉킨 채 숨진 시신 4구를 발견했다.
시신들의 모습을 볼 때 두 번의 사별 끝에 세 아이와 살던 여자 농장주 벨 거너스가 불이 나자 아이들을 꼭 안고 어떻게든 불길을 피해 보려다 함께 숨진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거너스의 시신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가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 신문들은 '불길도 두려워하지 않은 숭고한 모정' 따위의 제목을 단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화재 사건이 미국 역사상 여자가 저지른 최악의 연쇄살인을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연쇄살인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국 논픽션 작가 해럴드 섹터가 쓴 '지옥에서 온 여왕'(원제 Hell's Princess·알마)'은 전설이 돼 버린 '살인 농장'과 그 속에서 벌어진 잔혹한 범죄, 그리고 끝내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에 관한 이야기다.
화재 사건은 농장의 여주인과 결혼하겠다며 사우스다코타주에서 라포르테의 거너스 농장으로 간 이후 연락이 끊긴 앤드루 헬길리언을 찾기 위해 동생이 농장을 찾으면서 급반전한다.
뭔가 미심쩍었던 헬길리언의 동생은 처음 화재를 신고했던 일꾼이 거너스의 지시에 따라 구덩이를 파고 쓰레기를 묻었다는 곳을 파헤쳤고 거기서 마대 속에 든 사람의 목과 잘려 나간 팔을 발견했다.
곧 보안관과 검시관이 출동했고 범위를 넓혀 수색한 결과 성인 남자 두 명, 성인 여자와 여자 청소년 각 한 명 등 모두 4명의 시신이 더 발견됐다.
시신은 각각 6개 부위로 절단된 상태였다.
농장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음이 분명해졌고 당국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연쇄살인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때에 일어난 이 사건은 라포르테는 물론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거너스의 수상쩍은 행적이 잇따라 드러났다.
1859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거너스는 1881년 미국으로 이주해 먼저 시카고에 정착해 있던 언니 부부와 합류했다.
이민 전과 마찬가지로 허드렛일을 하며 빈곤하게 지내던 거너스는 3년 뒤 결혼하지만 1900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당시에는 거액인 5천 달러의 보험금을 받게 된다.
기막히게도 두 건의 보험 적용 기간이 겹치는 날이 단 하루 있었는데 남편이 마침 그날 세상을 떠나 보험금을 이중으로 타낼 수 있었다.
그 사이 농장이 딸린 주택을 사들여 라포르테로 이사한 거너스는 1902년 두 번째로 결혼했지만 식을 올린 지 닷새 뒤 남편이 데리고 온 생후 7개월짜리 의붓딸이 숨진 데 이어 8개월 뒤에는 남편마저 사망하게 된다.
거너스는 새 남편이 찬장에서 떨어진 고기 분쇄기에 머리를 맞아 다친 후 거실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했는데 어느 순간 살펴보니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살인 혐의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지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무혐의 종결됐고 두 번째 남편이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식 앞으로 든 생명보험의 보험금 2천 달러의 행방도 묘연했다.
진짜로 의심스러운 거너스의 행각은 두 번째 남편이 사망한 이후 시작된다.
노르웨이계 이민자들이 주로 보는 신문 등에 '반려자를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 찾아오는 남자들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를 시작하지만, 남자들은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거너스는 이렇게 끌어들인 남자들에게 한결같이 "있는 재산을 모두 처분해 현금으로 갖고 올 것"과 "주변에 이 사실을 절대로 알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앤드루 헬길리언도 이런 과정을 거쳐 거너스의 농장에 왔다가 실종된 것이다.
거너스의 드러난 행적과 농장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명백히 그가 연쇄살인을 저질렀음을 가리켰다.
남은 문제는 희생자가 더 있느냐는 것이었다.
경찰이 다시 수색에 나섰고 땅에 묻힌 시신들이 또 발견됐다.
피살자는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헬길리언과 서부의 대학을 다닌다던 거너스의 의붓딸 제니 올슨 등 일부 피해자는 신원도 확인됐다.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거너스의 농장을 찾았다가 실종된 남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역 경찰은 거너스 가족 살해 용의자로 한때 거너스의 정부이자 일꾼이었던 레이 램피어를 체포했지만 많은 사람은 현장에서 발견된 목 없는 시신은 거너스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갖다 놓은 다른 사람의 것이며 그는 살아서 어디론가 도망쳤을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기술로는 시신의 정확한 신원을 밝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상호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여러 증언과 증거, 황색 언론의 추측 보도가 난무한 가운데 배심원은 램피어의 살인 혐의는 무죄, 방화 혐의는 유죄라는 모호하고 타협적인 평결을 내놓고 이에 근거해 판사는 단기 2년, 장기 21년 징역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살인 현장에 살인과 무관한 사람이 불만 질렀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되지 않는 판단이었다.
램피어가 형량의 최저한도도 마치기 전에 옥중에서 사망하면서 사건의 진상은 더는 밝혀지기 어려운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는 증언이 나오는가 하면 정반대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이나 살아있는 거너스를 봤다는 신고가 전국 각지에서 잇따랐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100년 이상 의혹으로 남은 이 사건의 진상을 가리기 위해 2008년에는 시카고 공동묘지에 안치된 목없는 시신의 DNA를 조사하기도 했지만, 검사 결과는 '불확실'이었다.
저자도 온갖 기록을 뒤져가며 조사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거너스의 미스터리는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겠지만 그 구상이나 희생자들을 처형하는 잔혹한 방식이 도저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거너스는 충분히 '21세기의 대악마'로 불릴 만하다"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김부민 옮김. 488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