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그룹이 관련사업 예산 집행
은행권 디지털부서 존재감 커져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올해부터 IT 부문에 한해 연간 예산 계획을 없앴다. 기존에는 다른 사업 부문과 마찬가지로 1년치 예산 계획을 직전 해에 미리 수립해 제출해야 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전년 말에 예산 계획을 세우다 보니 실제 추진 시점에서 필요한 기술투자가 이뤄지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며 “IT 분야에 대거 투자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곧장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IT 관련 부서의 권한도 강화했다. 올해 다른 사업 부문도 IT 관련 사업에 대해서는 IT그룹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IT그룹 주관으로 만든 IT투자심의회의체가 중심이다. 각 사업 부문은 사업 추진 시점의 시장 상황과 트렌드, 신기술 등을 파악해 사업 추진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회의체가 이를 검토해 개별 승인한 뒤 예산을 집행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IT그룹이 사업 예산을 총괄하고 회의체가 사업별로 승인하는 형태”라며 “타당성이 떨어지는 IT 전략 집행 가능성을 낮춰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은행권도 ‘IT 퍼스트’ 바람
다른 은행들도 IT·디지털 관련 부서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디지털금융그룹을 ‘디지털 BIB’(뱅크인뱅크·은행 속의 은행) 체제로 개편했다. 본사 승인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다. 예산과 인사도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부문 인력은 본점이 아니라 별도 건물에서 자율 복장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농협은행도 IT 부문을 분사 형태로 운영한다. IT 부문장에게는 인사·평가·예산 조정 권한을 줬다. 하나은행은 IT·디지털을 총괄하는 ‘미래금융그룹’ 내 디지털전략위원회에서 예산뿐 아니라 상품 및 서비스를 독립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신한은행은 디지털그룹의 직급 체계를 선임-수석-부장 등 3단계 직급으로 단순화했다. 다른 사업 부문은 6개 직급으로 이뤄져 있다.
은행들이 이같이 IT·디지털 분야에 과감하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모바일·디지털 뱅킹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업무용 로봇 도입 등도 IT·디지털 관련 부서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보수적인 기존 은행의 조직과 업무 추진 방식으로는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어렵다는 위기 의식도 반영됐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보고와 직급 체계, 예산 집행 방식대로는 IT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이 크다”며 “오픈뱅킹 등 최근의 흐름을 감안하면 이런 움직임은 점차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