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군경 충돌로 400여명 부상…정국혼란 지속될 듯
고용·국가채무·환율 위험수위…"새 정부, IMF 구제요청 검토"

정정불안과 경제위기를 겪는 레바논에서 의회가 반기득권 시위대의 격렬한 반대를 뿌리치고 11일(현지시간) 새 정부를 신임했다.

AFP통신과 현지언론에 따르면 레바논 의회는 이날 8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재적의원 128명 중 84명이 출석해 63명이 찬성표를 던져 새 내각에 대한 신임안을 가결했다.

출석의원 대다수는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그 제휴세력이었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4개월간 이어진 반정부시위와 정정불안, 뒤따른 무정부상태로 더욱 악화한 고질적 경제위기를 해소해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다.

하산 디아브 신임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경제붕괴, 민중의 분노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위기돌파 의지를 밝혔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의회에서 이날 신임 투표가 진행될 때 베이루트 곳곳에서는 반대시위가 펼쳐졌다.

시위대 수백명은 이날 아침부터 베이루트 도심 순교자광장과 의회 도로 주변에 모여 디아브 총리의 내각에 대한 불신임을 주장했다.

시위대는 의원들의 의회 진입을 막으려고 시도했으며 베이루트 내 은행 지점 등에 불을 붙이고 돌을 던졌다.

이에 레바논 군경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발사했다.

레바논 의회, 반기득권 시위대 극렬저항에도 새 정부 신임(종합)
레바논 적십자는 시위자 373명이 최루가스에 노출되거나 다른 부상으로 치료를 받았고 이들 가운데 45명은 입원했다고 밝혔다.

앞서 디아브 총리는 지난달 21일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그 동맹 세력의 지지를 얻어 새 내각 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컴퓨터공학 교수 출신인 디아브 총리가 발표한 장관 20명은 대부분 전문가 출신이다.

그러나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대는 새 장관들도 부패한 권력층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해왔다.

레바논에서는 작년 10월 17일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정부 계획에 반발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뒤 지금까지 정국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는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전문적인 기술 관료들로 구성된 내각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종파가 다양한 레바논은 독특한 권력 안배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각각 맡고 있다.

1975∼1990년 장기 내전을 끝낸 레바논은 이후 튼실한 경제토대를 다지지 못한 채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 치솟는 실업률, 자국 통화가치의 급락 등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국가채무는 연간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할 때 약 150%나 될 정도로 심각하고 청년층 실업률은 30%를 훌쩍 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레바논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레바논 신문 '아나하르'는 집권연정에 소속된 한 중진 의원의 말을 인용해 레바논이 경제개혁안을 짜고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유로본드 12억 달러를 상환하기 위해 IMF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나비 베리 레바논 의회 의장은 아나하르 인터뷰에서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총리, 경제장관, 재무장관, 법률 및 금융 전문가로 신속대응반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나하르는 이렇게 발족하는 위원회가 IMF에 지원 요청과 함께 업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베리 의장은 "우리는 세계에, 특히 가장 영향력 있고 적극적인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레바논이 IMF의 기술적 도움과 구제계획이 필요하다고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하리리 전 총리는 사퇴 후 무정부상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총리 역할을 계속해오는 과정에서 경제,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세계은행과 IMF 양측에 도움을 요청한 바 있다.

레바논 의회, 반기득권 시위대 극렬저항에도 새 정부 신임(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