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이 확산하면서 정부가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고립된 우리 교민들을 전세기로 귀국시킨다는 뉴스가 나온 날이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과거 같이 근무한 적 있는 김지현 당시 남동서 경비계장(현 간석지구대 팀장)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찍혔다.
김 계장은 "우한 교민들이 귀국하면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격리 시설로 이송해야 하는데 버스 운전을 할 수 있겠느냐"고 다급히 물었다.
당시 남동서에 1종 대형운전면허를 보유한 직원은 꽤 있었지만, 실제로 대형버스를 운전해 본 경험이 적은 '장롱 면허'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당장 우한 교민 이송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이었다.
몇몇 젊은 경찰관들이 지원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으나 대부분 어린 자녀를 키우는 상황이라 실제로 수송 요원으로 선발하기는 어려웠다.
오 경위는 군 시절 1종 대형운전 면허를 땄고 제대 후 운전 경과로 경찰관이 됐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등 국내에서 열린 굵직한 국제대회 때마다 이송 업무에 투입된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오 경위는 김 계장의 전화를 받을 당시 어깨와 허리 관절이 좋지 않아 병가를 낸 상태였다.
오 경위는 우한 교민 이송 때 버스운전을 맡을 경찰관이 부족하다는 김 계장의 설명을 듣고선 선뜻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병가를 낸 상황인 줄 모르고 전화한 김 계장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며 만류했지만 오 경위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오 경위는 11일 "나 역시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경찰로서 주어진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해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우한 교민 이송지원을 위해 투입한 36대의 수송버스 중 17호차를 맡았다.
김포공항에서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까지 수송버스를 운행하는 임무였다.
지난달 31일 이른 새벽 김포공항에 도착한 그는 5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방호복과 보호 안경을 착용하고서 우한 교민들을 맞았다.
오 경위는 "오전 4시 좀 넘어서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미 취재진이 많이 와있었다"며 "국가의 중요한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면서 마음이 뭉클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교민들이 한 분씩 차량에 오르는데 많이 지쳐 보였다"며 "김포공항을 떠나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조용했고, 대부분 주무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틀간 김포와 충남을 두차례 오간 뒤 그의 임무도 끝이 났다.
오 경위는 "교민들이 내리면서 '수고했다'고 하는데 말주변이 없어 '감사하다'는 짧은 말밖에 건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확진자도 아닌데 치료를 잘 받으라고 하면 교민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한국에 잘 오셨다"는 말도 삼켰다.
오 경위는 우한 교민 이송 업무를 끝낸 직후인 이달 1일부터 인천 자택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오는 16일이 돼야 격리가 해제된다.
식기류는 물론 수건도 아내와 따로 쓰고 잠도 다른 방에서 자는 각방 생활이 불편하긴 하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 경위는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했는데 주변 동료들로부터 고생했다는 연락이 많이 와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국가를 신뢰했기에 이번 일을 하는 동안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고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