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4건 배터리 탓"…1차 조사 뒤집고 수출 주력품목에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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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실험도 안 한 조사단
"관리보강 이후에도 불나
하동 화재만 외부 물질 탓"
"관리보강 이후에도 불나
하동 화재만 외부 물질 탓"
지난해 6월 이후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5건에 대해 조사해온 민관합동조사단이 이 중 4건은 ‘배터리 결함’ 때문이라고 결론냈다. 지난해 1차 조사 발표 때 “부실한 설치·관리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놨지만 관리 보강 이후에도 추가 화재가 이어지자 결론을 뒤집어 배터리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과 삼성SDI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4건은 배터리 이상 때문”
민관합동 ESS 화재원인 조사단은 6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브리핑을 열고 화재원인 조사 결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김재철 공동조사단장(숭실대 전기공학과 교수)은 “작년 8월부터 발생한 5건의 ESS 화재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네 건(충남 예산,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김해)은 배터리 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나머지 한 건(경남 하동)은 이물질이 접촉한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SS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장비다. 2017년 8월 이후 원인불명 ESS 화재사고가 20건 이상 이어지자 정부는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작년 6월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당시엔 배터리 결함이 아니라 부실한 설치·관리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고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추가 화재가 이어지자 작년 10월 2차 민관합동 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였다. 1차 조사 때와 다른 결론이 나온 데 대해 김 단장은 “1차든 2차든 화재가 난 배터리는 모두 타서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분석이 불가능했다”며 “이번에는 운영기록이 담긴 블랙박스(운영 데이터 저장 장치)를 확보했고, 비슷한 기록이 있는 다른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가동환경과 비슷한 수준의 재현실험은 관련 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대책으로 신규 ESS 설비에 대해 충전율을 80%(건물 안) 또는 90%(건물 밖)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존설비에 대해서는 충전율 하향을 권고할 계획이다. 사업자가 기존에 건물 안에 설치된 ESS를 건물 밖으로 이전하기를 희망하면 정부가 이설 및 신규설치 비용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모든 ESS에 대해 블랙박스 설치와 데이터 보관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일각에서 필요성을 제기했던 리콜 명령은 포함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ESS 배터리는 소비재가 아니라 제품에 포함된 설비이기 때문에 전기안전법상 리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계 “조사단, 인과관계 규명 없어”
배터리업계는 조사단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사단이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목한 네 곳 중 두 곳(평창, 김해)엔 삼성SDI 제품이 들어갔고 나머지(예산, 군위)엔 LG화학 제품이 설치됐다. 두 회사는 “조사단이 ESS 화재의 전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하고 현상만 나열했다”고 날을 세웠다.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단순히 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배터리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지나친 단정이라고 했다. 배터리 회사들은 “피부암 환자들의 얼굴에 검버섯이 있다는 이유로 검버섯이 피부암의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배터리업계는 또 조사단이 분석한 배터리는 화재 현장에 있던 배터리와 같은제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조사단은 화재가 발생한 제품이 아니라 동일한 시기에 제조된 다른 배터리를 분석했다”며 “조사단의 결론이 맞다면 동일한 배터리가 설치된 ESS에서 모두 불이 나야 하는데 해외를 비롯해 그 어떤 곳에서도 추가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LG화학도 “지난 4개월간 가혹한 환경에서 자체 시행한 실증실험에선 화재 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업체들은 조사단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전압 편차는 화재 발생 조건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삼성SDI는 “충전율이 이렇게 낮은 조건에선 화재가 발생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두 업체는 일단 조사 결과에 따라 방지 대책을 내놨다. LG화학은 중국 난징에서 생산한 ESS 배터리를 전량 회수하고, 삼성SDI는 올 상반기까지 ESS 화재 확산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수출길 막힐까 우려
배터리업계는 이번 발표로 국내 ESS시장이 더 위축되고 나아가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ESS 시장의 60~70%가량을 삼성SDI와 LG화학이 차지하고 있는데 국내 배터리나 ESS의 신뢰도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SDI와 LG화학 뒤를 이어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 CATL이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삼성SDI의 점유율은 2018년만 해도 46%였지만 지난해 ESS 화재 조사 이후 28%로 급락했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ESS 안전 보강을 위해 설치 규제가 늘고 운영 비용이 증가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와 ESS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보급 확대를 위한 각종 보조금 혜택보다 기술개발 등 안전성에 초점을 맞춘 정부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구은서/정인설 기자 koo@hankyung.com
“4건은 배터리 이상 때문”
민관합동 ESS 화재원인 조사단은 6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브리핑을 열고 화재원인 조사 결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김재철 공동조사단장(숭실대 전기공학과 교수)은 “작년 8월부터 발생한 5건의 ESS 화재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네 건(충남 예산,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김해)은 배터리 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나머지 한 건(경남 하동)은 이물질이 접촉한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SS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장비다. 2017년 8월 이후 원인불명 ESS 화재사고가 20건 이상 이어지자 정부는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작년 6월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당시엔 배터리 결함이 아니라 부실한 설치·관리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고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추가 화재가 이어지자 작년 10월 2차 민관합동 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였다. 1차 조사 때와 다른 결론이 나온 데 대해 김 단장은 “1차든 2차든 화재가 난 배터리는 모두 타서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분석이 불가능했다”며 “이번에는 운영기록이 담긴 블랙박스(운영 데이터 저장 장치)를 확보했고, 비슷한 기록이 있는 다른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가동환경과 비슷한 수준의 재현실험은 관련 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대책으로 신규 ESS 설비에 대해 충전율을 80%(건물 안) 또는 90%(건물 밖)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존설비에 대해서는 충전율 하향을 권고할 계획이다. 사업자가 기존에 건물 안에 설치된 ESS를 건물 밖으로 이전하기를 희망하면 정부가 이설 및 신규설치 비용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모든 ESS에 대해 블랙박스 설치와 데이터 보관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일각에서 필요성을 제기했던 리콜 명령은 포함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ESS 배터리는 소비재가 아니라 제품에 포함된 설비이기 때문에 전기안전법상 리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계 “조사단, 인과관계 규명 없어”
배터리업계는 조사단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사단이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목한 네 곳 중 두 곳(평창, 김해)엔 삼성SDI 제품이 들어갔고 나머지(예산, 군위)엔 LG화학 제품이 설치됐다. 두 회사는 “조사단이 ESS 화재의 전체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하고 현상만 나열했다”고 날을 세웠다.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단순히 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배터리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지나친 단정이라고 했다. 배터리 회사들은 “피부암 환자들의 얼굴에 검버섯이 있다는 이유로 검버섯이 피부암의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배터리업계는 또 조사단이 분석한 배터리는 화재 현장에 있던 배터리와 같은제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조사단은 화재가 발생한 제품이 아니라 동일한 시기에 제조된 다른 배터리를 분석했다”며 “조사단의 결론이 맞다면 동일한 배터리가 설치된 ESS에서 모두 불이 나야 하는데 해외를 비롯해 그 어떤 곳에서도 추가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LG화학도 “지난 4개월간 가혹한 환경에서 자체 시행한 실증실험에선 화재 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업체들은 조사단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전압 편차는 화재 발생 조건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삼성SDI는 “충전율이 이렇게 낮은 조건에선 화재가 발생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두 업체는 일단 조사 결과에 따라 방지 대책을 내놨다. LG화학은 중국 난징에서 생산한 ESS 배터리를 전량 회수하고, 삼성SDI는 올 상반기까지 ESS 화재 확산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수출길 막힐까 우려
배터리업계는 이번 발표로 국내 ESS시장이 더 위축되고 나아가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ESS 시장의 60~70%가량을 삼성SDI와 LG화학이 차지하고 있는데 국내 배터리나 ESS의 신뢰도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SDI와 LG화학 뒤를 이어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 CATL이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삼성SDI의 점유율은 2018년만 해도 46%였지만 지난해 ESS 화재 조사 이후 28%로 급락했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ESS 안전 보강을 위해 설치 규제가 늘고 운영 비용이 증가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와 ESS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보급 확대를 위한 각종 보조금 혜택보다 기술개발 등 안전성에 초점을 맞춘 정부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구은서/정인설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