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70년 전 '反共' 매카시 광풍과 제노포비아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0년 2월 9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시에서는 공화당 여성당원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연방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연설 도중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들더니 "여기 국무부 안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소련을 위해 미국의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4년여 동안 미국 전역을 적색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매카시즘 광풍의 서막이었다.

이날 연설을 신호탄으로 폭로와 고발이 잇따랐다.

매카시가 이끄는 비미활동위원회(非美活動委員會·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 청문회장에는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은 각계 인사가 줄줄이 소환됐다.

정·관계는 물론 경제계, 시민단체, 노동계, 학계, 예술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도 적지 않았다.

정치 캠페인에 서명했거나 마르크스 저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지인이나 친척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이유로 불려 나온 사람도 있었다.

매카시가 지목하면 유력 인사도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신문들은 매카시 한마디 한마디를 대서특필하기에 바빴다.

위스콘신주 출신의 초선 의원 매카시는 단숨에 정계 최고 실세로 부상했다.

1952년에는 상대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재선에 성공했다.

FBI(미국연방수사국)는 이 기회를 틈타 할리우드 배우까지 광범위한 '빨갱이 색출'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사회에 비판적 성향을 보이면 소련 스파이로 몰아붙여 사회적으로 매장했다.

의심을 피하려고 고발에 앞장서거나 반공을 외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전설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을 떠났고, 공산당원 출신의 영화 거장 엘리아 카잔은 옛 동료들을 밀고했다는 오명을 썼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70년 전 '反共' 매카시 광풍과 제노포비아
미국 국민이 이상과 상식을 잃고 매카시의 선동에 휘둘린 까닭은 당시 공산주의의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49년 소련은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고 중국은 공산화됐다.

1950년 1월에는 원자폭탄 설계도를 소련에 넘겨 체포된 미국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가 혐의를 시인한 데 이어 고위 공무원 출신 앨저 히스가 소련 간첩 혐의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얼마 후에는 6·25 전쟁까지 터졌다.

그러나 정작 드러난 사실은 없었다.

매카시는 기자들이 명단 공개를 요청할 때마다 늘 웃으면서 "이 가방 안에 모든 이름이 있다"고 말했으나 가방을 열어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5명이라던 공산주의자는 57명, 10명으로 줄어들다가 존스홉킨스대의 오언 래티모어 교수 한 사람만 남았다.

나중엔 그마저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놓고 쥐 한 마리도 못 잡은 꼴이었다.

매카시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써먹던 비미활동위 청문회도 자기 몸을 찔렀다.

그가 1954년 2월 2차대전 영웅 랠프 즈위커 육군 준장을 소환하자 분노한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청문회를 TV로 생중계하도록 했다.

아이젠하워는 같은 공화당 소속이지만 군 고위층에도 공산주의자가 침투했다면 자신에게까지 책임이 돌아올 수 있어 선을 그으려 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매카시가 증거도 없이 흑백논리로 증인을 몰아붙인다는 사실을 알고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CBS TV 시사 프로그램 'See It Now'도 그해 3월 9일 '매카시 상원의원에 관한 보고서'를 방송해 매카시의 허점과 부당성을 폭로했다.

매카시는 늘 해오던 수법대로 프로그램 앵커 에드워드 머로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려 했으나 이제는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연방 상원은 1954년 12월 2일 매카시 견책안을 67대 22로 의결했다.

매카시가 숨진 1957년 연방대법원은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은 증인을 모두 사면 복권함으로써 매카시즘의 종언을 선언했다.

훗날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미국 국가를 부르는 동안 엉덩이를 긁적거린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았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70년 전 '反共' 매카시 광풍과 제노포비아
매카시 광풍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불신 풍조가 만연했고 학문과 예술은 위축됐다.

대신 미국은 큰 교훈을 얻었다.

전체주의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적국 동조자를 찾아내 박멸하기보다 인권을 보호하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매카시즘은 예전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상이 기독교도, 이민족, 이주민, 동성애자 등으로 옮겨갈 뿐이다.

고대 로마의 기독교도 탄압,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19세기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나치의 유대인 학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 일본 극우세력의 혐한(嫌韓) 시위 등이 그것이다.

집권자 등이 제노포비아(xenophobia·'낯선 것에 대한 공포'란 뜻으로 최근에는 '외국인 혐오증'을 가리킴)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 집단을 위험분자로 몰아 집단 공격을 퍼붓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매카시의 망령이 지배해왔다.

권위주의 정권은 반정부 인사들에 '좌파 불순세력'이나 '극렬 좌경분자'라는 딱지를 붙여 통치에 활용했다.

민주화를 이룬 뒤에도 진보 성향 인사는 종북주의자로 간주되기 일쑤였고 바로 얼마 전에도 '블랙리스트' 파동을 겪었다.

'촛불 혁명'을 거친 지금은 과연 어떨까.

예전보다 훨씬 많은 매카시가 전국 방방곡곡에 활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런 증거나 합리적 추론 없이 세대, 성별, 출신 지역, 정치 성향 등을 가르고 단편적 언행만 보고 지레짐작해 '좌좀'이니 '수꼴'이니 '틀딱'이니 '대깨문'이니 '달창'이니 '일베충'이니 '홍어'니 '한남충'이니 '맘충'이니 '된장녀'니 하며 혐오 표현을 쏟아낸다.

최근에는 대상이 이주민이나 외국인으로도 향하고 있다.

2018년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지위를 신청한 예멘인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와 강간범으로 의심받았다.

요즘은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인과 중국동포(조선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기는 보균자로 매도되고 있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70년 전 '反共' 매카시 광풍과 제노포비아
1948년 12월 10일에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와 생김새와 생각이 다르다고 차별하거나 출신과 배경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작 배제하고 혐오해야 할 대상은 70년이나 된 낡은 매카시즘이고 근거 없는 제노포비아다.

우리가 배타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남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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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