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에 경영상 사유 포함…"상황별 종합적 고려"
노동계 "노동존중사회 포기한 셈"…경영계 "기업 요구 따라 재개정 필요"
주 52시간제 예외 범위 넓혔지만…기준 모호해 혼란 불가피
정부가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을 확대하고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내놨지만, 한동안 산업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준에 모호함이 남아 있어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할 때 인가 요건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례가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혼란이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업무량 급증' 등 기준 불명확…혼란 불가피
고용노동부는 31일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에 업무량 급증과 같은 경영상 사유도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재해·재난과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예방 작업에 제한적으로 써온 특별연장근로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이 특별연장근로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는 만큼, 개정 시행규칙도 특별연장근로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인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을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의 사례는 노동부가 발간한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 설명자료'에 제시돼 있다.

업무량의 급증으로 특별연장근로를 써야 할 경우 주문량이 평상시보다 대폭 증가했음이 입증돼야 한다.
주 52시간제 예외 범위 넓혔지만…기준 모호해 혼란 불가피
예를 들어 지난 3개월 동안 인력 100명의 1주 평균 48시간 노동으로 에어컨 2만대를 생산한 기업이 이상고온 현상으로 주문량이 급증해 1주 평균 4천 대(20%)를 증산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인력 충원이 어렵다면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업무량은 같은데 인력이 갑자기 줄어든 경우도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기업의 전문 인력 100명이 특정 업무를 하는데 독감이 돌아 15명의 결원이 발생했다면 특별연장근로를 쓸 수 있다.

납기 단축에 따른 업무량 급증도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이다.

한 기업이 8주를 납기로 하고 1주 평균 48시간 노동으로 업무를 하던 중 4주가 지난 시점에서 잔여 납기를 1주 단축할 경우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업무량이 증가하는 경우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이 될 수 없다.

예측이 가능한 데다 유연근로제를 활용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상 사유로 특별연장근로를 쓰려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나 손해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도 입증돼야 한다.

자동차 부품 불량에 따른 대규모 리콜로 정비 업무가 급증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작업이 늦어지면 내구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할 수 있는 건설 공정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박람회와 체육·문화 행사의 국내 유치를 위한 준비 업무, 명절 기간 비상 운송, 장기간 합숙이 필요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업무 등도 같은 이유로 특별연장근로 대상이 될 수 있다.

노동부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지만,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내놓지는 않았다.
주 52시간제 예외 범위 넓혔지만…기준 모호해 혼란 불가피
업무량 급증의 경우 사안별로 기업의 생산량, 매출액, 노동자 수 변동, 납기 조정, 평상시 노동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동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불명확한 용어 사용으로 시행규칙 개정 취지와 달리 제도 활용이 제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권기섭 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30일 브리핑에서 "업무량 급증의 경우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 사례를 축적하면서 (기업을) 안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동계 "법적 대응" 경영계 "기업 어려움 해소에 역부족"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계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확대로 주 52시간제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을 확대한 개정 시행규칙은 특별연장근로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 제한한 근로기준법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법률에 의한 노동 조건 규제라는 헌법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며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기 위한 핵심 공약을 모두 포기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추진하고 정착시켜야 할 정부가 재난·재해에 한정적으로 활용하는 특별연장근로를 확대 시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은 개정 시행규칙을 '행정권 남용'으로 보고 행정소송을 포함한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양대 노총은 다음 달 3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공동 투쟁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경영계 요구에 따른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기조가 후퇴를 거듭해온 것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정부는 2018년 7월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간 300인 이상 사업장에 최장 9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한 데 이어 이달부터 주 52시간제 시행 대상인 50∼299인 기업에는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계도기간에는 노동시간 단속을 하지 않아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을 미룬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영계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확대를 큰 틀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는 못 미친다는 입장이다.

특히, 특별연장근로가 필요할 때마다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그 기준도 불명확해 행정 재량이 큰 점은 경영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경총은 "이번 시행규칙 개정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일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경영계 입장을 명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시행규칙을 조속히 재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 52시간제 예외 범위 넓혔지만…기준 모호해 혼란 불가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