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프로젝트에는 대리든 과장이든 상관없으니 ‘레벨5’ 좀 보내주세요.”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인 LG CNS는 매번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고객사와 한바탕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수주 프로젝트에 참여할 명단을 짤 때 고객사는 무조건 차장, 부장급의 선임 직원이 참여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선임급이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수주 금액이 달라질 정도였다.

지난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고객사에서 “직급은 상관없으니 ‘레벨5’를 보내달라”고 요구하면서다. 소프트웨어 전문가 집단인 LG CNS가 연공서열이 아니라 역량에 따라 직원 서열을 레벨1부터 레벨5까지 나누면서 생긴 변화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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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 대신 역량서열”

LG CNS의 ‘인사 혁신’은 2015년 말 김영섭 사장 취임 이후 시작됐다. 김 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T서비스 기업이 성장할 유일한 자산은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가 연계되면서 IT 통합 서비스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문제는 ‘맞춤형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문제 해결 방식이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최고의 IT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김 사장은 최고 기술자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인사 평가 및 연봉 지급 기준도 ‘기술’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6년부터 직원을 대상으로 ‘기술역량 레벨’ 평가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다. 외부 IT 전문가들부터 고객사는 물론 내부 직원들까지 각 분야 최고 전문가가 출제한 시험 문제를 토대로 기술인증시험을 보게 하고, 산업업무역량과 공통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종적인 기술 역량 레벨을 매긴다.

역량 평가결과를 반영해 연봉체계까지 바꿨다. 지난해부터 연봉 인상률을 산정할 때 기술역량 레벨을 50% 반영했다. 기술 역량이 뛰어난 전문가는 임금피크제 대상이라도 연봉 삭감 없이 임금을 보상받는다. 정년이 지나도 계속 다닐 수 있다. 임금피크제와 정년제도까지 사실상 폐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제도 도입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험을 통해 자신들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 대한 직원들의 반발이 컸다. 김 사장이 직접 나서 직원들을 설득했다. 전국 직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30회 이상 열었다. 분기별 정례모임, 사보, 사내 게시판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술 중심의 회사로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사원 대표로 구성된 노경협의회, 젊은 직원들로 꾸려진 미래구상위원회 의견을 수렴하면서 제도를 도입했다. 2021년부터는 기술 역량 레벨로만 연봉 인상률을 결정한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프로젝트 수행 결과가 좋아진 것은 물론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LG그룹 내외에서 벤치마킹하려고 찾아올 정도다.

디지털 혁신의 ‘주연’으로

김 사장의 ‘기술 중심주의’는 단순히 직원을 평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우수 사원 28명을 뽑아 구글, 페이스북의 컨설팅을 한 클라우드 컨설팅업체 슬라럼으로 연수를 보냈다. 이들은 슬라럼 본사에서 17주간 1 대 1로 클라우드 전문가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인당 들어간 예산은 약 2억원, 총 60억원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 더 많은 직원을 선발해 이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 미국 기업으로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혁신 시대에는 혼자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세계 ‘중원의 고수’들과 협업하며 더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협업 지존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개방형 혁신을 위해 글로벌 협업 영토도 넓히고 있다. 미국 슬라럼, 피보탈, 서비스나우뿐만 아니라 캐나다 엠보틱스 등 해외 클라우드 전문 기업과 협업을 발표했다. 국내 퍼블릭 클라우드 1위 기업인 메가존클라우드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오픈소스컨설팅을 인수했다.

고객사가 쌓아놓은 수많은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데이터 전문가도 잇따라 영입했다. LG CNS 데이터&어낼리틱스 사업부에는 IBM, 델 출신인 김은생 부사장을 영입해 조직을 이끌게 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 정우진 상무와 IBM, 델을 거친 김태훈 상무를 영입해 클라우드 전략과 사업담당을 맡겼다. 김 사장은 클라우드 서비스, 빅데이터 분석, AI 서비스 등 ‘본업’에 투자하기 위해 하드웨어 유통,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 등 6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정리했다.

LG그룹이 전사 차원의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면서 그룹 내에서 LG CNS가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그룹 내 IT 계열사로서 ‘지원자’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계열사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게 됐다.

LG CNS는 LG전자,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그룹 내 B2C(기업 대 소비자) 기업의 고객 데이터를 통합하고 외부 데이터와 연계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제조업과 통신사업을 함께 영위하는 국내 유일한 그룹인 만큼 데이터 활용성도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집 안의 LG전자 냉장고, 세탁기 이용 패턴과 생활건강에서 판매하는 세제 등 소비재 구입 패턴, 통신사 서비스 이용 현황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해 특정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한 명의 고객당 하나의 ID를 발급해 해당 고객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그룹 통합 ID 체계 도입, 고객 데이터 지수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까지 계열사 클라우드 전환을 90% 완료하고, 제조 계열사를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하는 것도 LG CNS 몫이다. 김 사장은 “최고 기술 전문가인 우리 직원들이 다양한 분야의 고객사로 찾아가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면서 등급을 매길 수조차 없이 뛰어난, ‘무등(無等)의 협업 지존자’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영섭 LG CNS 사장

△1959년 경북 문경 출생
△1977년 경북사대부고 졸업
△1984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4년 럭키금성상사 입사
△1995년 회장실 감사팀 부장
△1996년 LG상사 미국법인 관리부장
△2002년 LG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상무
△2003년 LG CNS 경영관리부문 상무
△2007년 LG CNS 경영관리본부 부사장
△2008년 LG CNS 하이테크사업본부 부사장
△2013년 LG CNS 솔루션사업본부 부사장
△2014년 LG유플러스 경영관리실 부사장(최고재무책임자·CFO)
△2015년~ LG CNS 대표이사 사장


고재연/윤희은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