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이지만 아직도 그럴듯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학생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아주 가끔은 내가 나쁜 선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학생 연주를 듣는 시간은 곧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다.
사실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은 1 대 1 수업이기 때문에 교육방식은 피교육자의 성향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따뜻한 말이 필요한 학생에게 엄하게 꾸짖거나, 따끔한 충고가 필요한 학생에게 다정스럽게 다가갔던 시행착오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은 상대방을 모르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인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 인간적인 유대감과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이 교육 대상이 사춘기를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이란 점이다. 그만큼 예민하게 살피고 대처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오랜 기간 하다 보니 마치 심리학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교수생활을 시작할 때인 1990년대 학생들과 요즘 학생들을 비교하면 큰 변화가 느껴진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는 ‘신세대’ 학생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뜨아’나 ‘빠바’는 기본이고 최근에는 ‘차콥’(차이코프스키)이나 ‘아싸 작곡가’(아웃사이더 작곡가)까지 등장했다. 이런 대화가 되지 않으면 졸지에 ‘꼰대’가 되고, 그 순간 선생의 말은 구시대 유물로 전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관이 변함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연주 스타일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획일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난 자기의 개성이 담긴 독창적인 연주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공연예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요즘 가장 큰 숙제는 학생들에게 이런 독창성을 찾아주는 것이다. 어쩌면 답이 없는 과제일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독창성은 즐거움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피아노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과연 내가 가르치고 있을까? 또다시 반성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