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전쟁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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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P 테일러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번역 출간
일반 대중은 물론 다수 역사학자도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전쟁'이라고 본다.
선동적인 언사로 패전 후 절망감에 빠진 독일 국민을 사로잡아 권력을 움켜쥔 히틀러가 처음에는 은밀하게, 나중에는 공공연히 베르사유조약을 위반해가며 군비를 확장해 주변 국가를 침략함으로써 이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옥스퍼드대학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 A. J. P. 테일러(1906~1990)의 1961년 작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원제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페이퍼로드)'은 이 같은 통념에 맞서는 수정주의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번에 나온 한글판은 저자 사후 1991년 출간된 증보판을 번역했다.
그는 히틀러 한 사람에게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모두가, 심지어 독일인들까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이기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혀야 하는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처리부터 그 후 유럽 각국 정세와 히틀러의 집권 및 독일의 재무장, 주변국 침략의 과정을 세세히 살피며 제2차 세계대전의 동인을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히틀러가 강력한 독일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욕망을 지닌 것은 다른 나라의 여느 정치인과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전쟁 준비에 '올인'하기보다는 '벼랑 끝 전술'에 주로 의지했다.
히틀러는 독일의 군비를 은폐하기는커녕 실제보다 과장하는 '허풍'을 떨었고 대규모 전쟁을 감행할 것처럼 위협을 해댔다.
이렇게 함으로써 히틀러는 전쟁 없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고 실제로 라인란트 진주(1936년), 오스트리아 합병(1938년), 체코 주데텐란트 합병과 프라하 침공(1938~1939년) 등을 통해 침략 야욕을 노골화하는 동안 재무장을 강행한 독일의 군사력과 히틀러의 전쟁 의지를 두려워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변국들은 유화책으로 일관했다.
당시의 외교 기록과 히틀러의 공식, 비공식 발언, 전후의 전범 재판 기록과 전쟁 이전 및 전쟁 기간 내 주요국의 통계 지표 등을 치밀하게 살펴본 저자는 히틀러의 위협은 '허풍'에 불과했다고 단언한다.
독일이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히틀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전쟁 준비보다는 '민생 안정'에 더 역점을 기울였다는 것은 객관적인 통계와 자료들이 이를 입증한다.
히틀러 자신은 전쟁 발발 전에 재군비를 위해 900억마르크를 썼다고 주장했지만 저자가 파악한 바로는 실제 재군비에 투입된 비용은 400억마르크에 그쳤다.
반면에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일반 투자는 1928, 1929년 수준으로 회복했다.
히틀러는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생활 수준이 떨어져 인기를 잃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시기 독일 국민의 생활 수준은 나아지고 있었다.
히틀러는 전쟁 직전 시기인 1938~1939년 주로 소련과 전쟁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으로 군비 예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군비 지출은 국내총생산의 15%로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939년 전쟁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프랑스의 전력을 비교해 보면 전투기 1천450대와 950대, 폭격기 800대와 1천300대, 전차 3천500대와 3천850대로 대등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히틀러의 상대들이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전쟁 위협은 외교적 전술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까웠지만 어리석고 겁많은 상대방에게는 통하는 수법이었다.
이것이 통하지 않았던 유일한 상대는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독일계 주민이 많아 독일이 탐내던 단치히를 내주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중재'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는 이번에도 히틀러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고 했지만 군사력이 빈약해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큰 피해를 겪을 것이 분명한 폴란드는 "체코와 같은 꼴을 당하지 않겠다"면서 강경하게 버텼고 이것이 결국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결국 히틀러의 '벼랑 끝 전술'은 그보다 더 무모한 도박꾼을 만나면서 끝장을 보게 된 셈이다.
이처럼 기존의 관점과 다른 견해와 사실을 드러낸 것에 관해 저자는 "전설들을 깨뜨리는 일이 히틀러를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에 기여하는 일이다"라고 썼다.
초판이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어느 호전광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일깨움은 지금도 가치가 있을 듯하다.
유영수 옮김. 560쪽. 3만3천원. /연합뉴스
일반 대중은 물론 다수 역사학자도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전쟁'이라고 본다.
선동적인 언사로 패전 후 절망감에 빠진 독일 국민을 사로잡아 권력을 움켜쥔 히틀러가 처음에는 은밀하게, 나중에는 공공연히 베르사유조약을 위반해가며 군비를 확장해 주변 국가를 침략함으로써 이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옥스퍼드대학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 A. J. P. 테일러(1906~1990)의 1961년 작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원제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페이퍼로드)'은 이 같은 통념에 맞서는 수정주의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번에 나온 한글판은 저자 사후 1991년 출간된 증보판을 번역했다.
그는 히틀러 한 사람에게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모두가, 심지어 독일인들까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이기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혀야 하는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처리부터 그 후 유럽 각국 정세와 히틀러의 집권 및 독일의 재무장, 주변국 침략의 과정을 세세히 살피며 제2차 세계대전의 동인을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히틀러가 강력한 독일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욕망을 지닌 것은 다른 나라의 여느 정치인과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전쟁 준비에 '올인'하기보다는 '벼랑 끝 전술'에 주로 의지했다.
히틀러는 독일의 군비를 은폐하기는커녕 실제보다 과장하는 '허풍'을 떨었고 대규모 전쟁을 감행할 것처럼 위협을 해댔다.
이렇게 함으로써 히틀러는 전쟁 없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고 실제로 라인란트 진주(1936년), 오스트리아 합병(1938년), 체코 주데텐란트 합병과 프라하 침공(1938~1939년) 등을 통해 침략 야욕을 노골화하는 동안 재무장을 강행한 독일의 군사력과 히틀러의 전쟁 의지를 두려워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변국들은 유화책으로 일관했다.
당시의 외교 기록과 히틀러의 공식, 비공식 발언, 전후의 전범 재판 기록과 전쟁 이전 및 전쟁 기간 내 주요국의 통계 지표 등을 치밀하게 살펴본 저자는 히틀러의 위협은 '허풍'에 불과했다고 단언한다.
독일이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히틀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전쟁 준비보다는 '민생 안정'에 더 역점을 기울였다는 것은 객관적인 통계와 자료들이 이를 입증한다.
히틀러 자신은 전쟁 발발 전에 재군비를 위해 900억마르크를 썼다고 주장했지만 저자가 파악한 바로는 실제 재군비에 투입된 비용은 400억마르크에 그쳤다.
반면에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일반 투자는 1928, 1929년 수준으로 회복했다.
히틀러는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생활 수준이 떨어져 인기를 잃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시기 독일 국민의 생활 수준은 나아지고 있었다.
히틀러는 전쟁 직전 시기인 1938~1939년 주로 소련과 전쟁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으로 군비 예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군비 지출은 국내총생산의 15%로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939년 전쟁 발발 당시 독일과 영국-프랑스의 전력을 비교해 보면 전투기 1천450대와 950대, 폭격기 800대와 1천300대, 전차 3천500대와 3천850대로 대등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히틀러의 상대들이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전쟁 위협은 외교적 전술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까웠지만 어리석고 겁많은 상대방에게는 통하는 수법이었다.
이것이 통하지 않았던 유일한 상대는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독일계 주민이 많아 독일이 탐내던 단치히를 내주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중재'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는 이번에도 히틀러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고 했지만 군사력이 빈약해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큰 피해를 겪을 것이 분명한 폴란드는 "체코와 같은 꼴을 당하지 않겠다"면서 강경하게 버텼고 이것이 결국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결국 히틀러의 '벼랑 끝 전술'은 그보다 더 무모한 도박꾼을 만나면서 끝장을 보게 된 셈이다.
이처럼 기존의 관점과 다른 견해와 사실을 드러낸 것에 관해 저자는 "전설들을 깨뜨리는 일이 히틀러를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에 기여하는 일이다"라고 썼다.
초판이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어느 호전광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일깨움은 지금도 가치가 있을 듯하다.
유영수 옮김. 560쪽. 3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