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풍운의 영국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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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체제 전통이 유구한 유럽 대륙에는 10개의 왕실이 남아 있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리히텐슈타인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모나코,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 왕실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출발지이자 의회와 민주주의가 태동한 나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영국 하면 화려한 버킹엄 궁전, 궁전을 지키는 근위대,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비운의 다이애나빈 등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영국이 낳은 최대 브랜드는 영국 왕실’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세계인의 시선이 다시 영국 왕실로 쏠리고 있다. 왕위계승 서열 6위인 해리왕자(35)와 메건 마클 왕자빈(38)의 충격적인 ‘독립·탈영국 선언’ 덕분이다. 직계가 왕실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은 1936년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자진 퇴위한 에드워드 8세 이후 처음이다. 즉위 1년 만에 왕위를 포기하고 윈저공으로 돌아간 에드워드 8세는 프랑스에서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패션감각과 유머를 갖춘 미남 왕세자로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 묘하게 겹친다. 해리 왕자도 ‘메그시트’가 불거지기 전까지 왕족선호도 조사에서 늘 선두를 달렸지만 최근 5위권으로 추락했다. 헬리콥터 조종사로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해 최고 신랑감으로도 꼽혔던 해리왕자의 결단은 모친인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비극에 따른 트라우마 탓이라는 진단이 많다.
왕실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어온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해리왕자는 “너무나도 슬프다”고 했지만 여왕은 ‘분노했다’고 한다. 해리왕자 부부가 꽤 오랫동안 ‘탈왕실·탈영국’을 몰래 계획한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 데 따른 배신감이 적지 않은 듯하다.
최장기 재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왕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온 주인공이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의 ‘도피’ 덕분에 왕위에 오른 그는 “의무가 먼저이고 내 자신은 그 다음”이라는 헌신으로 사랑받는 왕실을 일궜다. 다이애나빈의 비극으로 반(反)왕실 여론이 들끓었을 때도 “사람들은 감동과 눈물을 원하지만 나는 가슴에 묻어두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며 냉정하게 돌파했다. 이번에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아프리카계 혈통의 이혼녀 메건 왕자빈에 대한 일각의 비난은 금기를 넘어 조롱으로 치닫고 있다. 94세의 여왕은 어떻게 왕관의 무게를 이겨나갈까.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영국은 산업혁명의 출발지이자 의회와 민주주의가 태동한 나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영국 하면 화려한 버킹엄 궁전, 궁전을 지키는 근위대,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비운의 다이애나빈 등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영국이 낳은 최대 브랜드는 영국 왕실’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세계인의 시선이 다시 영국 왕실로 쏠리고 있다. 왕위계승 서열 6위인 해리왕자(35)와 메건 마클 왕자빈(38)의 충격적인 ‘독립·탈영국 선언’ 덕분이다. 직계가 왕실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은 1936년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자진 퇴위한 에드워드 8세 이후 처음이다. 즉위 1년 만에 왕위를 포기하고 윈저공으로 돌아간 에드워드 8세는 프랑스에서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패션감각과 유머를 갖춘 미남 왕세자로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 묘하게 겹친다. 해리 왕자도 ‘메그시트’가 불거지기 전까지 왕족선호도 조사에서 늘 선두를 달렸지만 최근 5위권으로 추락했다. 헬리콥터 조종사로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해 최고 신랑감으로도 꼽혔던 해리왕자의 결단은 모친인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비극에 따른 트라우마 탓이라는 진단이 많다.
왕실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어온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해리왕자는 “너무나도 슬프다”고 했지만 여왕은 ‘분노했다’고 한다. 해리왕자 부부가 꽤 오랫동안 ‘탈왕실·탈영국’을 몰래 계획한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 데 따른 배신감이 적지 않은 듯하다.
최장기 재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왕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온 주인공이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의 ‘도피’ 덕분에 왕위에 오른 그는 “의무가 먼저이고 내 자신은 그 다음”이라는 헌신으로 사랑받는 왕실을 일궜다. 다이애나빈의 비극으로 반(反)왕실 여론이 들끓었을 때도 “사람들은 감동과 눈물을 원하지만 나는 가슴에 묻어두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며 냉정하게 돌파했다. 이번에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아프리카계 혈통의 이혼녀 메건 왕자빈에 대한 일각의 비난은 금기를 넘어 조롱으로 치닫고 있다. 94세의 여왕은 어떻게 왕관의 무게를 이겨나갈까.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