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출신의 4선 의원으로, 정치적·사법적 수난을 거치면서도 다시 일어나 '오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뒤 검찰에서 서울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차기 검찰총장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길로 정계에 발을 디뎌 2000년 16대 총선에 당선(전남 보성·화순)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해 낙선했으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광주 동구로 옮겨 전국 최고 득표율로 재선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지역구에서 발생한 '전직 동장 자살사건'에 연루돼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1999년 옷로비 사건, 2000년 나라종금 사건, 2004년 현대건설 비자금 사건 등에서 구속됐지만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2년 '동장 모임' 사건에서도 구속됐지만, 벌금 80만원형으로 의원직을 유지했다.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국민의당으로, 20대 국회에서 바른미래당으로 옮기면서 국회 부의장과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부인 이현숙씨와 3남을 두고 있다.

▲ 전남 보성(66) ▲ 서울대 법학과 ▲ 대검 수사기획관 ▲ 청와대 법무비서관 ▲ 16·18·19·20대 국회의원 ▲ 민주당 최고위원 ▲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 국민의당 최고위원 ▲ 국회 부의장 ▲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4번 구속 3번 무죄 오뚝이' 박주선 국회 정보위원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