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가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지난해 소회 및 올해 각오를 밝힌 뒤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올해엔 골프에 더 미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며 “기록을 남기는 선수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신지애가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지난해 소회 및 올해 각오를 밝힌 뒤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올해엔 골프에 더 미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며 “기록을 남기는 선수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는 2018시즌을 마무리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신지애(31)가 한 시즌 메이저 대회 3승의 위업을 달성했는데 딱히 줄 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투어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결국 ‘올해의 영예상’이라는 상을 새로 만들었다. “한 시즌 큰 기록을 세우거나 투어 발전에 공로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올해의 영예상’ 최초 수상자인 신지애는 지난해 2년 연속 이 상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일본 남녀 프로 골프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60대 평균타수(69.9399)를 적어낸 게 밑거름이 됐다.

일본 투어에서 2년 연속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음에도 신지애는 “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020년 새해 달력에 이렇게 적어 지난해 말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성장하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 에너지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골프에 더 미치는 것”

신지애가 지난해 JLPGA투어에서 최저타수상을 받은 이래 주변에서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가 그것이다. 그는 “지난해엔 오롯이 제 플레이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며 “플레이에 푹 빠졌던 게 주효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2016년부터 새 시즌 시작에 앞서 매해 똑같은 목표 하나를 세우고 있다. ‘골프에 더 미치는 것’이다. “직업이 골퍼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중간에 힘들거나 지치면 나도 모르게 도망가려고 하게 돼요. 그럴 때마다 골프를 더 알아가고 골프에 더 미쳐야 한다는 게 제가 내리는 결론이에요.”

신지애는 ‘골프=바탕’이라고 했다. “골프는 저한테 스케치북 자체예요.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기억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제겐 골프예요. 골프를 하면서 좋은 영향을 주는 분들을 많이 만났으니까, 저도 누구에겐가 갚으려면 열심히 해야죠.”

JLPGA투어 상금왕에 다시 도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줄곧 상금 랭킹 1위를 달렸지만 막판에 뒷심이 부족해 일본 여자 골프의 간판 스즈키 아이(26)에게 상금왕을 내줬다.

그는 “올 시즌 목표도 상금왕으로 잡고 지인들에게도 상금왕이 꼭 되겠다고 약속했다”며 “지난해는 시즌 내내 ‘과정’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신지애가 일본 투어에서 상금왕을 거머쥐면 여자 골퍼 최초로 한·미·일 3국 상금왕을 모두 차지하는 대기록을 쓰게 된다.

한국 여성 골퍼 최초 통산 60승 ‘눈앞’

신지애의 새해 첫 JLPGA투어 대회는 오는 3월 5일 개막하는 2020시즌 개막전 다이킨오키드 레이디스골프토너먼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회를 비롯한 올 시즌 준비를 위해 지금은 몸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체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기술력, 정신력, 체력 모두 중요하지만 기술력과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체력”이라는 얘기다. “짧은 퍼트를 놓치는 게 집중력 차이라고 하는데 이 집중력을 지켜주는 게 결국 체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두 명의 트레이너로부터 ‘특급 관리’를 받고 있다. 호주인 트레이너와 10년을 같이한 가운데 최근 일본인 트레이너가 합류했다. 두 트레이너가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해 만든 최적의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기록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또 하나의 기록에 도전한다. 한국 여자 골퍼 최초로 개인 통산 60승 달성이 그것이다. 2006년 프로로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한국 21승, 미국 11승, 일본 22승, 유럽 1승, 아시아 2승을 각각 거뒀다. 14년간 수확한 우승 트로피가 57개다. 3승만 더하면 새로운 금자탑을 쌓을 수 있다.

웬만한 선수라면 평생을 노력해도 이루기 쉽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신지애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은퇴 후를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어떻게 은퇴하느냐가 먼저”라고 답했다. 이어 “마무리가 잘 돼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고 지금은 ‘어떻게 은퇴할 것인가’를 더 생각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어떻게’에는 지인들을 잘 챙기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는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2~3년 전부터 주변에서 저를 위해 노력해준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선수로서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주변 분들을 더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력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수가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해요. 기록을 남기는 선수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는 게 진정한 제 꿈입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