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은 2000년 10월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에 강남점(신세계 강남점)을 열었다. 신세계의 일곱 번째 백화점이었다. 강남이란 입지 외에는 내세울 게 없었다. 인근 상권엔 현대백화점 본점, 갤러리아명품관 등 ‘강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도 영업 중이었다. 경쟁 점포와 달리 신세계 강남점은 임차 점포였다. 센트럴시티에 임차료를 주고 건물을 빌려 썼다.

20년이 흘렀다. 신세계 강남점은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국내 백화점 중 처음이다. 매출 2조원은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영국 런던 ‘해러즈’, 일본 도쿄 ‘이세탄’ 등 세계 최고 백화점들만 달성한 실적이다. 신세계 강남점이 ‘세계 4대 백화점’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세계 강남점이 지난해 국내 백화점 최초로 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7일 소비자들이 1층 화장품 매장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세계 강남점이 지난해 국내 백화점 최초로 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7일 소비자들이 1층 화장품 매장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센트럴시티 지분 1조원에 사들여

신세계 강남점의 ‘성공’은 오너 경영자의 과감한 결단, 입지의 장점을 극대화한 복합개발, 소비 트렌드에 맞춘 기민한 혁신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애초 신세계는 강남점을 강남 상권 공략을 위한 교두보 정도로 생각했다. 투자비를 줄이기 위해 복합쇼핑몰인 센트럴시티를 임차했던 배경이다. 그런데 기대보다 장사가 잘됐다. 개점 10년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매출 1조원 점포는 당시 서울 소공동 롯데 본점뿐이었다. 센트럴시티 소유주인 말레이시아 사모펀드가 모를 리 없었다. 신세계에 임차료 인상을 요구했다. 이때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센트럴시티 경영권 인수에 나선 것이다. ‘임차료 상승’이란 불확실성을 안고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세계는 2012년 사모펀드로부터 센트럴시티 지분 60.02%를 1조25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신세계가 ‘조 단위’로 투자한 첫 사례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 강남점을 중심으로 한 센트럴시티의 잠재력에 대한 이 회장의 ‘베팅’이 결국 성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年매출 2조 '신세계' 찍었다
명품 백화점 이미지…외국인 몰려

센트럴시티 경영권을 확보한 신세계는 판을 다시 짰다. 강남 한복판에 대규모 ‘신세계 타운’을 조성하기로 했다. 우선 기존 시설물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다. 백화점은 규모를 키웠다. 신·증축을 통해 영업 면적을 기존 5만5500㎡에서 8만6500㎡로 약 55% 늘렸다. 외형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백화점이 됐다.

센트럴시티 내 JW메리어트호텔도 리뉴얼했다. 국내 호텔 중 가장 고급스럽게 꾸몄다. 최고층에는 하루 숙박비 1000만원이 넘는 펜트하우스도 선보였다. 여기에 면세점까지 들였다. 서울 명동점에 이어 2018년 6월 2호점을 신세계 강남점에 입점시켰다. 강북 중심의 서울 시내면세점 시장에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대규모 투자는 시너지 효과로 이어졌다.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 최고급 호텔,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면세점이 어우러져 상승작용을 냈다. 내국인이 주로 방문하던 신세계 강남점에는 최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지난해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60%나 급증했다. 구매한 외국인들의 국적은 중국 대만 러시아 일본 베트남 등 46개국에 달했다.

명품 소비 확대 수혜

소비 트렌드를 빨리 읽어 명품 매장을 대거 확대한 선택도 적중했다. 신세계 강남점의 ‘벤치마크’는 영국 해러즈였다. 해러즈는 ‘영국의 왕실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로 고급스럽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3대 명품’을 비롯한 럭셔리 브랜드를 대거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현재 120여 개 명품 브랜드가 매장을 운영 중이다.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발렌티노는 남성과 여성, 슈즈 매장을 국내 백화점 중 유일하게 신세계에서만 운영한다. 외형과 매출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국내 최고의 ‘명품 백화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최근 2~3년 새 명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신세계 강남점이 많은 덕을 봤다. 지난해 명품 매출 비중은 40%를 넘었다. 20% 안팎인 국내 백화점 평균을 두 배가량 웃돌았다.

개점 20년. 신세계 강남점은 이제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가 신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포가 됐다. 차정호 신세계백화점 사장은 “글로벌 트렌드세터들이 찾는 랜드마크 백화점으로 입지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