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도입 관측 빗나가…"대중,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지수"
법정 디지털화폐 뜸 들이는 중국…"계속 연구한다"
중국이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발행 시기를 놓고 뜸을 들이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작년 디지털 화폐를 당장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시장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점진적인 연구 개발'이 더 필요하다면서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인민은행은 5일 연초 업무 회의를 마치고 내놓은 성명에서 "법정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계속 점진적으로 법정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점진적 연구개발' 원칙을 강조한 것은 디지털 화폐 발행 시점을 정하는 데 신중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의 디지털 화폐 발행이 임박했다는 관측은 작년 인민은행 당국자의 공개 발언 이후 급격히 대두했다.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지불결제국 부국장은 작년 8월 10일 공개 학술회의에서 "디지털 화폐를 당장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상태"라고 공개했다.

포브스는 같은 달 복수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중국이 연중 최고 쇼핑 축제일인 11월 11일을 앞두고 디지털 화폐 발행을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10월 블록체인의 발전 동향을 주제로 한 정치국 집단학습을 주재하고 블록체인 산업의 혁신적 발전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하면서 중국 디지털 화폐 도입에 관한 시장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시장 일각의 기대와 달리 작년 11월 11일 쇼핑 축제까지 디지털 화폐는 발행되지 않았다.

이후 인민은행은 디지털 화폐 발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시간표가 마련된 것은 아니라면서 시장의 기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메시지를 지속해 발신 중이다.

인민은행의 이런 미묘한 태도 변화를 놓고 우선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 계획이 불투명해진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은 기존 가상화폐의 대표 주자 격인 비트코인과 더불어 달러 등 다양한 국가의 화폐로 가치를 지지받는 '스테이블 코인'인 리브라의 도입이 국제 경제 질서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에 대비해 자국의 경제 주권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디지털 화폐 도입을 서둘러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리브라를 둘러싼 논란이 커진 가운데 발행 일정이 불투명해지자 인민은행으로서는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 우선 제기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이 가상화폐와 관련된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 육성을 직접 강조한 것이 시장에 가상화폐 및 관련 산업 단속을 완화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책 신호를 줌에 따라 중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 도입 전에 일정한 '냉각기'가 필요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시 주석의 발언 직후 자국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다시 주목을 받자 전국적으로 집중 단속을 펴면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동의어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준비하는 법정 디지털 화폐는 비트코인 등 기존 민간의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집중적인 통제 원칙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디지털 화폐는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기술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공산당의 강력한 '영도'와 '관리'를 중요시하는 중국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인민은행 당국자들은 법정 디지털 화폐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데 부정적인 의견을 지속해 피력해왔다.

이 밖에도 알리페이나 텐센트페이 등을 통해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편리한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갖춘 중국에서 법정 디지털 화폐가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남아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디지털 화폐에 관한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상업계와 대중이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라며 "비판론자들은 이미 전자 결제가 보편화한 중국에서 디지털 화폐가 편리함을 주지도 않고, 인플레이션을 회피할 기능도 없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