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회권규약 위원회 "구체적인 일정 없다" 지적
기업 인권침해 방지·차별금지법 제정도 "진전 부족"
EU 이어 유엔도 한국에 ILO 핵심협약 비준 압박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 규약) 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일부 진전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비준 일정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럽연합(EU)에 이어 유엔도 한국에 ILO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거듭 촉구한 것으로, 협약 비준을 위한 국제적인 압박 강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5일 정부에 따르면 유엔 사회권 규약 위원회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포함한 위원회 권고 사항을 한국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관한 평가 결과를 지난달 9일 정부에 통보했다.

유엔 사회권 규약 가입국인 한국은 정기적으로 규약 이행 심의를 받는다.

위원회는 2017년 10월 한국에 대한 4번째 심의 최종 견해에서 ▲ 기업의 인권침해 방지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 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작년 4월 권고 사항 이행 노력을 설명하는 후속 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했다.

위원회의 이번 평가 결과는 정부 보고서에 대한 공식 답변이다.

위원회는 평가 결과에서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위한 한국 정부의 계획과 조치를 평가하지만, 비준을 위한 시간(timeframe)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점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부가 구체적인 비준 일정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작년 5월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등 ILO 핵심협약 3개의 비준 방침을 밝히고 비준 동의안과 노조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국회 통과는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EU 이어 유엔도 한국에 ILO 핵심협약 비준 압박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결사의 자유 확대를 위한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 공무원노조 가입 대상 확대, 퇴직 교원의 교원노조 가입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위원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노조법 개정에 대해 "결사의 자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동자의 범위를 넓히려고 하지만, 제한 조건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노조 결성·가입 권리가 제한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특수고용직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분류돼 노동권이 제한된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플랫폼 노동자도 여기에 해당한다.

위원회는 기업의 인권침해 방지에 대해서는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적절한 주의(due diligence)의 법적 의무화라는 위원회 권고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진전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모든 차별의 근거를 아우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지 않았고 가까운 미래에 이를 위한 조치를 계획하고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유엔 사회권 규약 가입국에 대한 위원회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국제적인 '인권 성적표'로 통한다.

이번 평가 결과에서 한국의 인권 수준이 아직도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못 미친다는 점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특히, EU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을 근거로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부족하다며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간 상황에서 유엔도 핵심협약 비준 압박에 가세한 형국이 됐다.

한국과 EU 양측은 한국의 FTA 위반 여부를 따질 전문가 패널을 구성했고 패널은 작년 12월 30일 활동에 착수했다.

전문가 패널이 한국의 FTA 위반 결론을 내릴 경우 한국은 국제적으로 '노동권 후진국'의 낙인이 찍힐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