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냉랭한데…스크린·안방 달구는 남북 브로맨스·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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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일 뿐" vs "현실 왜곡, 보기 힘들다"
올해 남북 소재 영화 개봉 잇따라 "영화 촬영 중에 북한 선제 타격이니 어쩌니 난리가 났다.
그러다 촬영을 마쳤을 때는 남북 정상이 다리에서 만나고, 우리 영화와 비슷한 장면이 구현돼 놀랐다.
"
2018년 여름 개봉한 영화 '공작'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 말이다.
'공작'은 북한에 잠입한 실존 안기부 첩보원과 북한 고위 간부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때마침 남북 관계가 급속히 해빙 무드에 접어들었을 때 공개돼 큰 화제를 모았다.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현실과 비슷한 장면이 극 중에 등장해서다.
그러나 윤 감독은 개봉 때까지 주변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북한 소재 작품을 기획개발 중이지만, 몇 년째 '타이밍'을 놓고 고민 중이다.
그는 "남북·북미 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면서 언제쯤을 목표로 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 '훈훈' '달달' 남북 브로맨스·로맨스…"현실 왜곡" vs "드라마일 뿐"
북한 관련 소재는 한국 영화·드라마 단골 소재다.
극적인 갈등을 담아낼 수 있고 액션,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가 가능하며 남녀 간 사랑은 물론 민족애, 휴머니즘 등 여러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위험부담도 크다.
실제 남북 관계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영화 내용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가 많다.
통상 영화 기획부터 개봉까지 최소 3년, 길게는 7년 이상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모험인 셈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북한을 바라보는 관객 시선이 매우 복잡하기에 콘텐츠를 만들 때는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어디까지 할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작품이 공개될 당시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남북관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영화 '백두산'과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둘러싼 논란도 이 연장선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연일 위협 수위를 높이는 시점에 훈훈한 남북 브로맨스와 달곰한 로맨스를 그리다 보니 현실과 괴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700만명을 넘긴 '백두산'은 2014년부터 기획해 상업적으로 가장 무난한 이야기를 택했음에도 논란을 비껴가진 못했다.
브로맨스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과정에서 북한 요원 리준평(이병헌 분)의 활약이 남한 요원 조인창(하정우)보다 훨씬 더 돋보이는 탓에 북한군을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한국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와 북한 엘리트 장교 리정혁(현빈)의 로맨스를 그린 '사랑의 불시착'은 시청률 6%대로 시작해 10% 돌파를 앞뒀다.
SNS와 인터넷에선 드라마 속 북한말인 '후라이 까지 마라'(거짓말 마라), '샴팡'(샴페인), '가락지빵'(도넛), '살결물'(스킨로션), '밥가마'(밥솥), '살까는 중'(살 빼는 중), '귀때기'(도청하는 사람) 같은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10대, 20대를 중심으로 "북한말이 생소하면서 재밌다, 기발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성 시청자들은 현빈, 손예진이 연기하는 로맨스에 열광한다.
지난달 30일 방영된 6회 시청률은 평균 9.2%였지만, 40대 여성 시청률은 순간 최고 13.4%를 기록했다.
반면, '보기가 힘들다'는 반응도 많다.
국경 근처 북한 마을을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전원 마을처럼 묘사한 점 등 현실을 왜곡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40대 시청자(회사원)는 "북한 풍경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다 보니 채널을 돌리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을 무작정 미화한 것은 아니다.
일상화한 도청, 잦은 정전 등 북한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했다.
탈북민 한송이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드라마 설정이 북한에 살던 때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전화 도청이나 유일한 간식거리가 누룽지인 점 등 디테일을 잘 살린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관계자는 "오래전 기획된 작품으로, 남북관계보다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일각에선 북한 장교 역을 현빈이 맡은 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빈은 영화 '공조'에 이어 두 번째로 북한군을 연기했다.
'강철비'에선 정우성, '백두산'에선 이병헌이 북한군으로 나왔다.
영화계 관계자는 "남북 관계가 안 좋을 때는 미남 배우들을 북한 쪽으로 캐스팅해야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다"면서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 나온 '간첩 리철진'(1999)에선 리얼리티를 살려 유오성이 간첩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 그래도 북한은 "매력적"
여러 논란에도 북한 소재는 여전히 창작자들에겐 매력적인 소재다.
올해만 해도 '강철비' 양우석 감독 신작 '정상회담'을 비롯해 여러 편이 개봉 준비 중이다.
정우성·곽도원 주연 '정상회담'은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의 쿠데타로 남북한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이 핵잠수함에 납치·감금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모로코에서 촬영 중인 류승완 감독 신작 '모가디슈'는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에 고립된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목숨을 건 탈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최민식 주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와 '수포자' 고등학생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배급사 관계자는 "북한 소재라도 반목, 대립보다는 결국 사람 이야기를 다룬다"며 "개봉 시기에 정치적 변동 소지는 있지만, 이는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지욱 평론가는 "이제는 관객도 영화를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하고, 작품 자체가 가진 함의나 상업성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면서 "다만 남북을 다룬 영화들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보다 섬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올해 남북 소재 영화 개봉 잇따라 "영화 촬영 중에 북한 선제 타격이니 어쩌니 난리가 났다.
그러다 촬영을 마쳤을 때는 남북 정상이 다리에서 만나고, 우리 영화와 비슷한 장면이 구현돼 놀랐다.
"
2018년 여름 개봉한 영화 '공작'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 말이다.
'공작'은 북한에 잠입한 실존 안기부 첩보원과 북한 고위 간부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때마침 남북 관계가 급속히 해빙 무드에 접어들었을 때 공개돼 큰 화제를 모았다.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현실과 비슷한 장면이 극 중에 등장해서다.
그러나 윤 감독은 개봉 때까지 주변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북한 소재 작품을 기획개발 중이지만, 몇 년째 '타이밍'을 놓고 고민 중이다.
그는 "남북·북미 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면서 언제쯤을 목표로 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 '훈훈' '달달' 남북 브로맨스·로맨스…"현실 왜곡" vs "드라마일 뿐"
북한 관련 소재는 한국 영화·드라마 단골 소재다.
극적인 갈등을 담아낼 수 있고 액션,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가 가능하며 남녀 간 사랑은 물론 민족애, 휴머니즘 등 여러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위험부담도 크다.
실제 남북 관계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영화 내용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가 많다.
통상 영화 기획부터 개봉까지 최소 3년, 길게는 7년 이상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모험인 셈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북한을 바라보는 관객 시선이 매우 복잡하기에 콘텐츠를 만들 때는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어디까지 할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작품이 공개될 당시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남북관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영화 '백두산'과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둘러싼 논란도 이 연장선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연일 위협 수위를 높이는 시점에 훈훈한 남북 브로맨스와 달곰한 로맨스를 그리다 보니 현실과 괴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700만명을 넘긴 '백두산'은 2014년부터 기획해 상업적으로 가장 무난한 이야기를 택했음에도 논란을 비껴가진 못했다.
브로맨스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는 과정에서 북한 요원 리준평(이병헌 분)의 활약이 남한 요원 조인창(하정우)보다 훨씬 더 돋보이는 탓에 북한군을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한국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와 북한 엘리트 장교 리정혁(현빈)의 로맨스를 그린 '사랑의 불시착'은 시청률 6%대로 시작해 10% 돌파를 앞뒀다.
SNS와 인터넷에선 드라마 속 북한말인 '후라이 까지 마라'(거짓말 마라), '샴팡'(샴페인), '가락지빵'(도넛), '살결물'(스킨로션), '밥가마'(밥솥), '살까는 중'(살 빼는 중), '귀때기'(도청하는 사람) 같은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10대, 20대를 중심으로 "북한말이 생소하면서 재밌다, 기발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성 시청자들은 현빈, 손예진이 연기하는 로맨스에 열광한다.
지난달 30일 방영된 6회 시청률은 평균 9.2%였지만, 40대 여성 시청률은 순간 최고 13.4%를 기록했다.
반면, '보기가 힘들다'는 반응도 많다.
국경 근처 북한 마을을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전원 마을처럼 묘사한 점 등 현실을 왜곡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40대 시청자(회사원)는 "북한 풍경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다 보니 채널을 돌리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을 무작정 미화한 것은 아니다.
일상화한 도청, 잦은 정전 등 북한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했다.
탈북민 한송이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드라마 설정이 북한에 살던 때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전화 도청이나 유일한 간식거리가 누룽지인 점 등 디테일을 잘 살린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관계자는 "오래전 기획된 작품으로, 남북관계보다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일각에선 북한 장교 역을 현빈이 맡은 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빈은 영화 '공조'에 이어 두 번째로 북한군을 연기했다.
'강철비'에선 정우성, '백두산'에선 이병헌이 북한군으로 나왔다.
영화계 관계자는 "남북 관계가 안 좋을 때는 미남 배우들을 북한 쪽으로 캐스팅해야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다"면서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 나온 '간첩 리철진'(1999)에선 리얼리티를 살려 유오성이 간첩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 그래도 북한은 "매력적"
여러 논란에도 북한 소재는 여전히 창작자들에겐 매력적인 소재다.
올해만 해도 '강철비' 양우석 감독 신작 '정상회담'을 비롯해 여러 편이 개봉 준비 중이다.
정우성·곽도원 주연 '정상회담'은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의 쿠데타로 남북한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이 핵잠수함에 납치·감금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모로코에서 촬영 중인 류승완 감독 신작 '모가디슈'는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에 고립된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목숨을 건 탈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최민식 주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와 '수포자' 고등학생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배급사 관계자는 "북한 소재라도 반목, 대립보다는 결국 사람 이야기를 다룬다"며 "개봉 시기에 정치적 변동 소지는 있지만, 이는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지욱 평론가는 "이제는 관객도 영화를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하고, 작품 자체가 가진 함의나 상업성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면서 "다만 남북을 다룬 영화들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보다 섬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