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CCTV 철탑서 205일째·영남대병원 옥상서 184일째 고공농성
전국서 고공 시위 잇따라…전문가들 "정부나 정치권 중재 나서야"
'세밑 하늘 위'의 해고 노동자들…"해결될 때까진 못 내려간다"
해고 노동자들이 연말연시에도 따스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부당 해고에 따른 복직 등을 요구하며 200일 안팎의 오랜 기간 철탑 위나 건물 옥상에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31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에는 1995년 삼성에서 해고된 김용희(60) 씨가 205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했다며 복직 요구 시위를 해왔다.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정년을 맞았을 지난 7월 10일을 한 달 앞두고 그는 철탑 위로 올라갔다.

김씨는 "목숨 걸고 올라왔기 때문에 새해에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고공농성을 이어갈 것"이라며 "감옥 독방보다 좁은 공간에서 먼지를 마시며 생활하다 보니 건강이 안 좋아져 약을 먹으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로 인해 세상이 나아지고 삼성이 변화된다면 보람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해고간호사인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영남대 의료원 소속 박문진(59) 지도위원의 영남대 옥상 고공농성은 이날로 184일째를 맞았다.

지난 7월 1일 송영숙(43) 부지부장과 함께 무기한 농성을 시작한 그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2007년 2월 해고됐다.

이들은 노조 기획탄압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재발 방지, 노조 원상회복,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농성 시작 107일째인 10월 15일 송 부지부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농성장을 떠나 지금은 박 위원 혼자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박 위원은 "화장실 문제 등이 불편하고 좁은 공간에 오래 있어 감기 기운 등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지만, 사태 해결 전까지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세밑 하늘 위'의 해고 노동자들…"해결될 때까진 못 내려간다"
이들뿐만 아니라 올 한 해 전국 곳곳에서는 톨게이트 수납원과 타워크레인 노조, 철거민 등의 고공 시위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고공에서 내려온 뒤 문제가 일단락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농성장의 갈등 요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언제든지 고공농성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공공연대노조 등으로 구성된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투쟁본부' 노조원 41명은 지난 6월 30일부터 97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10m 높이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 올라 한국도로공사 측에 요금 수납원 전원을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한국도로공사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중재로 양대 노총 중 한국노총과 일단 정규직 전환 관련 소송 2심에 계류 중인 수납원을 직접 고용하고 1심 계류자들은 판결에 따라 직접 고용하기로 합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합의에 불참해 '반쪽 타결'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경기 침체로 신규 노동력 진입이 단절되며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일자리 확보를 위한 민주·한국 노총의 '밥그릇 싸움'이 고공 시위의 형태로 전국에서 격화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전국연합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본부 노조원 3명은 지난 3일 양산시 동면 사송지구 한 건설회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 있는 45m 높이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고 4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광주에서도 지난 10월 15일 한국노총 건설노조원이 광주 북구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벌였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지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 위 90m 높이에서 토지 강제 수용에 불만을 품은 40대 남성이 지난 9월 13일부터 70일간 고공 농성을 벌였다.

충남 천안에서는 일봉산 도시공원 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서상옥(53)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지난달 14일부터 약 20일간 고공농성과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공농성 등 극한의 시위방식이 전국에서 계속되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나 정치권 등 외부의 적극적인 중재를 주문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규직 노동자 같은 경우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단체행동이나 실력행사를 통해 원하는 것을 협상할 수 있다"면서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나 약자는 힘이 없다 보니 극한의 행동으로 고공농성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당사자 간 입장차가 크기 때문에 중재자나 조정자가 필요하다"며 "고공농성을 하다가 장기화하거나 또 다른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고용노동부 노사관계전담부서는 물론 정치계가 앞장서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도 "갈등이 장기적으로 이어진 곳에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제가 없고, 불신이 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시민사회나 종교계라도 나서 인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밑 하늘 위'의 해고 노동자들…"해결될 때까진 못 내려간다"
(권선미 권숙희 권준우 김소연 김현태 박정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