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받은 식자재로 매일 40∼50개 도시락·밑반찬·죽 만들어 배달
사상구 덕포1동 '갤러리 부엌' 주부들 4년째 선행…"봉사도 중독"
"이웃의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이웃이란 의미가 사라져가는 각박한 세태지만, 아침마다 경쾌한 도마소리와 구수한 집밥 냄새에 잠을 깨우는 마을이 있다.

부산 사상구 덕포1동 강선대 행복마을에 있는 '갤러리 부엌'이 그곳. 봉사 장면을 갤러리처럼 보여줘 '해피 바이러스'를 마을 구석구석에 전파하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덕포1동 홀몸 어르신 등 취약계층 점심 도시락 40∼50개를 만든다.

음식 재료는 사상구 전통시장 나눔 냉장고에서 기부받은 채소와 사상구 푸드마켓으로 들어온 개인·기업 후원품 등이 활용된다.

갤러리 부엌의 주인은 이 마을 40∼70대 주부 10여명이다.

이들은 어떠한 보상도 없이 4년 넘게 동네 어르신들의 점심 식사 챙기는 일을 하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부엌에 들어선 탁옥선(70) 씨도 이 부엌의 고정 멤버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지만, 그는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능숙한 솜씨로 야채 손질을 시작했다.

4년 6개월 동안 거의 매일같이 해온 일이다.

그가 채소를 다듬고 있는 동안 부엌 안으로 하나둘 주부들이 들어섰다.

정겨운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부엌 안은 금세 잔칫집 분위기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음식 준비를 총괄하는 지휘자는 따로 없다.

그러나 주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위치에 서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쳤다.

분주한 손놀림이 이어질수록 부엌 안은 고소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우리 가족 식사는 못 챙겨도, 어르신 밥을 거를 수는 없죠. 당장 도시락이 없으면 끼니 거를 분들이 많은데…"
이날 주방에 모인 주부들의 맏언니 겪인 탁씨는 이른 새벽 '출근'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대접받는 어르신은 대부분 취약계층이다.

최근 마을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젊은 세대는 대부분 이주했고,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만 남아 외롭게 둥지를 지키고 있다.

이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거나 한 끼 식사를 2∼3번 나눠서 먹을 만큼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한 이들이 많다.

이웃 주부들의 도시락 지원이 그만큼 절실하다.

주부들은 몇 해 전 주먹밥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마을 협동조합 사업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도시락 배달로 확대됐고, 올해 초 부산시 도시재생 사업의 지원을 받아 아담한 전용 공간까지 마련했다.

주부들은 "처음에는 재능기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도시락을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 배를 곯는다는 걱정과 책임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거동 불편 노인을 위한 도시락 배달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인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정성 담긴 도시락을 전달하고, 안부와 건강 상태 등도 살핀다.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고, 인연이 이어지면서 자녀 노릇까지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덕포1동 사무소 관계자는 "주부들의 세심한 눈썰미가 위기 노인 구조나 고독사 예방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점심 무렵이 되면서 갤러리 부엌은 더욱 분주해졌다.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오고 왁자지껄한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이날은 한 달 1차례 주부들이 마을 어르신을 위해 생일상을 준비하는 날이다.

12월 생일을 맞는 어르신들이 초대돼 정성 가득 담긴 미역국과 떡, 과일 등을 대접받았다.

환한 미소로 손뼉을 치며 재롱떠는 주부들의 모습에 무겁던 어르신들의 표정도 금세 밝아졌다.

갤러리 부엌 봉사단을 이끄는 신춘희 회장(강선대 행복마을 위원장)은 봉사도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의 며느리와 딸이 돼 생일상을 차려드릴 때가 가장 보람 있다"며 "특별한 것 없는 생일상에 감격해 눈물짓거나 맛난 도시락에 건강해졌다고 고마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봉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갤러리 부엌 주부들은 매달 한 번씩 마을 주민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는 '공동밥상'도 운영한다.

150명 안팎의 주민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공동체 정을 나눈다.

이들은 또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을 위해 매주 일주일 치 죽을 끓이고 밑반찬을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이 같은 선행 덕에 재개발로 어수선한 덕포1동은 골목골목마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선영 덕포1동 복지사무장은 "식자재를 기부하는 이웃, 이른 새벽부터 부엌에 나와 봉사하는 이웃 덕분에 마을 안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주부들의 활약상을 치켜세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