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스님, 성녀 최소피아를 향한 고백…"존경하고 사랑했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980년초 연 맺은 40년 지기…테레사 수녀, 최소피아에 "노벨평화상 적임자" 극찬
노년에도 봉사하다 쓰러진 수녀…삼중스님 "이번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겠지" 서로 다른 종교에 몸담았지만 끊어질 듯 말 듯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24일 전화기 너머 박삼중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고 왔으며, 그간 수녀님을 깊이 존경하고 사랑했다고 털어놨다.
'스님, 수녀님을 사랑하셨다고요?'
1980년대 대구 시립희망원에서 중복 장애인, 부랑아 등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최소피아 수녀. 그의 본명은 최분이. 올해로 여든둘이다.
1981년 성녀(聖女) 마더 테레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 호텔방을 사양하고 내려가 잔 곳이 바로 최소피아 수녀가 있던 시설이었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테레사 수녀가 이 상을 받을 적임자는 바로 최소피아 수녀라고 했던 일은 두고두고 회자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일생을 가장 낮은 곳에 머물며 어려운 이들을 살폈던 최소피아 수녀는 현재 포항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몇해 전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쓰러진 뒤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스님은 한국의 성녀로 불리는 최소피아 수녀와 인연을 또렷이 기억했다.
올해 일흔일곱인 자신도 당뇨 합병증으로 8년간 신장 투석을 받는 몸이지만 최소피아 수녀를 처음 만난 일부터 40년 인연을 소개하는 일에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삼중 스님이 최소피아 수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다.
그는 시립희망원에서 일하는 최소피아 수녀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해 부처님오신날 거리에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했다.
불심으로 모은 돈을 왜 다른 종교에 보내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좋은 일에 보태는 것을 가리지 말자는 스님 의견에 뒷말은 없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희망원을 종종 찾았는데 누군가 피부를 잡아 뜯어놓은 듯 그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당시 희망원 시설에는 지체, 정신 장애를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들이 많았다.
주사하나 놓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얼굴이 긁히고 잡히는 일이 많아지며 상처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삼중 스님은 "얼굴에 그렇게 상처를 입고서도 또다시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향하는 수녀님을 보니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깊이 반했다"고 떠올렸다.
스님은 교도소 재소자 교화 일을 하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지만 최소피아 수녀는 희망원 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한번은 스님이 언론사 기자를 불교청년회 회원으로 속이고 최소피아 수녀를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는 바람에 둘 사이가 급격히 틀어져 버렸다.
선의에서 도와주려 했던 일이 큰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최소피아 수녀는 자신이 한 일은 하느님에게 보고하는 것이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을 나무랐다고 했다.
"수녀님이 화를 많이 냈어요.
'왜 나를 타락시키느냐'라고 했죠. 그런데 그 일로 저는 수녀님을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
최소피아 수녀는 이런 일이 있고 나서는 10년가량을 스님과 거리를 뒀다고 한다.
연락해도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스님이 시설 설립에 어려움을 겪던 수녀님이 적십자사를 통해 도움을 받도록 연결해주면서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로 여느 종교인들처럼 교류가 이어졌으나 어느 날 최소피아 수녀와 연락이 끊겼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삼중 스님이 경주 자비사로 신병 치료 차 내려오면서 최소피아 수녀의 근황을 알게 됐다.
그곳이 바로 포항의 한 요양원이었다.
스님은 올여름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요양원을 처음 찾은 데 이어 24일 세 번째로 그를 만나고 돌아왔다.
최소피아 수녀는 머리에 산타클로스 모자도 쓰고 스님을 맞았지만 끝내 스님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삼중 스님은 "운영이 잘됐던 시설을 떠나 또다시 어려운 곳에서 봉사하다가 그만 쓰러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녀님을 다시 만나러 요양원에 가고 싶지만, 서로가 이런 상태에서 만나면 안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지 않겠나"고 말을 맺었다.
/연합뉴스
노년에도 봉사하다 쓰러진 수녀…삼중스님 "이번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겠지" 서로 다른 종교에 몸담았지만 끊어질 듯 말 듯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24일 전화기 너머 박삼중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고 왔으며, 그간 수녀님을 깊이 존경하고 사랑했다고 털어놨다.
'스님, 수녀님을 사랑하셨다고요?'
1980년대 대구 시립희망원에서 중복 장애인, 부랑아 등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최소피아 수녀. 그의 본명은 최분이. 올해로 여든둘이다.
1981년 성녀(聖女) 마더 테레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 호텔방을 사양하고 내려가 잔 곳이 바로 최소피아 수녀가 있던 시설이었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테레사 수녀가 이 상을 받을 적임자는 바로 최소피아 수녀라고 했던 일은 두고두고 회자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일생을 가장 낮은 곳에 머물며 어려운 이들을 살폈던 최소피아 수녀는 현재 포항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몇해 전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쓰러진 뒤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스님은 한국의 성녀로 불리는 최소피아 수녀와 인연을 또렷이 기억했다.
올해 일흔일곱인 자신도 당뇨 합병증으로 8년간 신장 투석을 받는 몸이지만 최소피아 수녀를 처음 만난 일부터 40년 인연을 소개하는 일에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삼중 스님이 최소피아 수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다.
그는 시립희망원에서 일하는 최소피아 수녀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해 부처님오신날 거리에서 모금한 성금 40만원을 전달했다.
불심으로 모은 돈을 왜 다른 종교에 보내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좋은 일에 보태는 것을 가리지 말자는 스님 의견에 뒷말은 없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스님은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희망원을 종종 찾았는데 누군가 피부를 잡아 뜯어놓은 듯 그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당시 희망원 시설에는 지체, 정신 장애를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들이 많았다.
주사하나 놓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얼굴이 긁히고 잡히는 일이 많아지며 상처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삼중 스님은 "얼굴에 그렇게 상처를 입고서도 또다시 주사를 놓으러 방으로 향하는 수녀님을 보니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깊이 반했다"고 떠올렸다.
스님은 교도소 재소자 교화 일을 하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지만 최소피아 수녀는 희망원 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한번은 스님이 언론사 기자를 불교청년회 회원으로 속이고 최소피아 수녀를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는 바람에 둘 사이가 급격히 틀어져 버렸다.
선의에서 도와주려 했던 일이 큰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최소피아 수녀는 자신이 한 일은 하느님에게 보고하는 것이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을 나무랐다고 했다.
"수녀님이 화를 많이 냈어요.
'왜 나를 타락시키느냐'라고 했죠. 그런데 그 일로 저는 수녀님을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
최소피아 수녀는 이런 일이 있고 나서는 10년가량을 스님과 거리를 뒀다고 한다.
연락해도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스님이 시설 설립에 어려움을 겪던 수녀님이 적십자사를 통해 도움을 받도록 연결해주면서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로 여느 종교인들처럼 교류가 이어졌으나 어느 날 최소피아 수녀와 연락이 끊겼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삼중 스님이 경주 자비사로 신병 치료 차 내려오면서 최소피아 수녀의 근황을 알게 됐다.
그곳이 바로 포항의 한 요양원이었다.
스님은 올여름 최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요양원을 처음 찾은 데 이어 24일 세 번째로 그를 만나고 돌아왔다.
최소피아 수녀는 머리에 산타클로스 모자도 쓰고 스님을 맞았지만 끝내 스님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삼중 스님은 "운영이 잘됐던 시설을 떠나 또다시 어려운 곳에서 봉사하다가 그만 쓰러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녀님을 다시 만나러 요양원에 가고 싶지만, 서로가 이런 상태에서 만나면 안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지 않겠나"고 말을 맺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