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허진호 "세종과 장영실, 사미인곡처럼 절절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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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지나도 멜로장인, 감사하고 신기하다"
세종과 장영실, 조선의 두 천재 이야기를 그린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허진호 감독의 인장이 선명한 작품이다.
세밀한 연출로 인물의 감정을 한 땀 한 땀 그려내는 그의 장기가 응집돼있다.
시대를 거스른 두 남자의 진한 우정이 밤하늘 별처럼 스크린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는 세종(한석규 분)이 관노였던 장영실(최민식)을 면천한 뒤 20년간 함께하며 조선 하늘과 시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기기 등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오는 26일 개봉을 앞두고 최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허 감독은 "이야기의 출발은 장영실이 갑자기 역사 속에서 왜 사라졌을까, 아무리 잘못해도 신하를 내치지 않던 세종이 장영실은 왜 내쳤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면서 "많은 자료조사를 거쳐 영화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빈틈을 채워나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영실은 그가 관리 감독한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극 중 세종과 장영실 관계는 '군신 로맨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 훈훈하면서 밀도 있게 그려진다.
허 감독은 세종을 향한 장영실의 마음에 대해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처럼 절절했을 것 같다"며 "언젠가 홀로서는 나라를 꿈꿨을 세종 역시 자기의 꿈을 실현해준 장영실을 친구로 두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처음부터 최민식과 한석규를 주연으로 염두에 뒀다.
"각각의 배역은 두 배우가 오랜 고민 끝에 직접 결정했죠. 촬영 현장에서 최민식 씨는 기를 밖으로 펼치는 쪽이고, 한석규 씨는 안으로 모으는 편이라 연기가 너무 달랐어요.
그런 연기 스타일이 세종의 냉철함, 장영실의 천재적인 열정과 각각 잘 맞아떨어졌죠."
허 감독은 "둘은 실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사이"라며 "영화를 찍다 보면 배우들 간 긴장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떠올렸다.
허 감독은 배우들이 캐릭터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믿고 맡겼고, 아이디어도 많이 수용했다.
세종과 장영실이 근정전 앞에서 함께 누워 별을 보는 장면은 한석규가 제안한 장면이다.
원래는 둘이 걸어가면서 하늘을 보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왕이 눕는다는 것은 파격적인데, 세종이 장영실을 대하는 시선을 보여줄 수 있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되짚었다.
비가 오는 날 장영실이 세종의 침전 창호지에 먹칠한 뒤 구멍을 뚫어 다양한 별자리를 만드는 장면에서도 둘은 의견을 보탰다.
"흰 창호지에 구멍을 뚫으면 빛이 잘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장영실의 천재성을 보여줄 수 있게 먹칠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기억했다.
허 감독은 3년 전 '덕혜옹주'에 이어 또다시 사극을 택한 데 "사극을 찍을 때 불편함은 있지만, 역사가 가진 힘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아직도 '멜로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라면 먹고 갈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같은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2001)가 여전히 멜로 명작으로 꼽히는 덕분이다.
허 감독은 "20년도 넘는 작품인데 아직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만든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며 "지금까지 기억해주는 게 고맙고 신기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창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난 작품보다는 아무래도 다음 작품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감독들은 자기가 만든 영화를 잘 안 봅니다.
3년 전 한 영화제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상영한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보러 갔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죠. 그 영화에 한석규가 마루에 누워서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밖의 빨랫줄에 빨래가 너무 많이 걸려있어요.
당시 편집할 때 그 장면을 보면서 후회했었는데, 3년 전에 봤을 때도 여전히 빨래가 많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작품의 흠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하하"
/연합뉴스
세종과 장영실, 조선의 두 천재 이야기를 그린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허진호 감독의 인장이 선명한 작품이다.
세밀한 연출로 인물의 감정을 한 땀 한 땀 그려내는 그의 장기가 응집돼있다.
시대를 거스른 두 남자의 진한 우정이 밤하늘 별처럼 스크린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는 세종(한석규 분)이 관노였던 장영실(최민식)을 면천한 뒤 20년간 함께하며 조선 하늘과 시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기기 등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오는 26일 개봉을 앞두고 최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허 감독은 "이야기의 출발은 장영실이 갑자기 역사 속에서 왜 사라졌을까, 아무리 잘못해도 신하를 내치지 않던 세종이 장영실은 왜 내쳤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면서 "많은 자료조사를 거쳐 영화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빈틈을 채워나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영실은 그가 관리 감독한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극 중 세종과 장영실 관계는 '군신 로맨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 훈훈하면서 밀도 있게 그려진다.
허 감독은 세종을 향한 장영실의 마음에 대해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처럼 절절했을 것 같다"며 "언젠가 홀로서는 나라를 꿈꿨을 세종 역시 자기의 꿈을 실현해준 장영실을 친구로 두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처음부터 최민식과 한석규를 주연으로 염두에 뒀다.
"각각의 배역은 두 배우가 오랜 고민 끝에 직접 결정했죠. 촬영 현장에서 최민식 씨는 기를 밖으로 펼치는 쪽이고, 한석규 씨는 안으로 모으는 편이라 연기가 너무 달랐어요.
그런 연기 스타일이 세종의 냉철함, 장영실의 천재적인 열정과 각각 잘 맞아떨어졌죠."
허 감독은 "둘은 실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사이"라며 "영화를 찍다 보면 배우들 간 긴장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떠올렸다.
허 감독은 배우들이 캐릭터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믿고 맡겼고, 아이디어도 많이 수용했다.
세종과 장영실이 근정전 앞에서 함께 누워 별을 보는 장면은 한석규가 제안한 장면이다.
원래는 둘이 걸어가면서 하늘을 보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왕이 눕는다는 것은 파격적인데, 세종이 장영실을 대하는 시선을 보여줄 수 있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되짚었다.
비가 오는 날 장영실이 세종의 침전 창호지에 먹칠한 뒤 구멍을 뚫어 다양한 별자리를 만드는 장면에서도 둘은 의견을 보탰다.
"흰 창호지에 구멍을 뚫으면 빛이 잘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장영실의 천재성을 보여줄 수 있게 먹칠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기억했다.
허 감독은 3년 전 '덕혜옹주'에 이어 또다시 사극을 택한 데 "사극을 찍을 때 불편함은 있지만, 역사가 가진 힘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아직도 '멜로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라면 먹고 갈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같은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2001)가 여전히 멜로 명작으로 꼽히는 덕분이다.
허 감독은 "20년도 넘는 작품인데 아직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만든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며 "지금까지 기억해주는 게 고맙고 신기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창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난 작품보다는 아무래도 다음 작품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감독들은 자기가 만든 영화를 잘 안 봅니다.
3년 전 한 영화제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상영한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보러 갔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죠. 그 영화에 한석규가 마루에 누워서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밖의 빨랫줄에 빨래가 너무 많이 걸려있어요.
당시 편집할 때 그 장면을 보면서 후회했었는데, 3년 전에 봤을 때도 여전히 빨래가 많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작품의 흠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하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