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인정
송병기 수첩에 'VIP' 수차례 언급
송 부시장은 평소 꼼꼼한 메모로 유명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6일 송 부시장의 집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 수색해 수첩 등을 확보했다.
송 부시장이 자필로 적은 이 업무 수첩에는 청와대를 뜻하는 'BH'와 대통령을 뜻하는 'VIP'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송 부시장 수첩이 국정농단 사건 당시 결정적 증거가 됐던 안종범 수첩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송 부시장 수첩에서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2017년 10월 송 시장에게 울산시장 출마 요청을 했고, 청와대가 송 시장 당내 경쟁자를 정리하려 했다는 취지의 메모가 나왔다.
대통령의 출마 권유는 문제가 없지만 권유 직후 청와대가 송 시장을 지원하고 당내 경쟁 후보들을 배제하려고 시도했다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4월 당내 후보 선출 절차를 생략하고 송 시장을 단독 공천했다.
비슷한 시기 송 부시장의 다른 수첩 속 메모를 보면 청와대의 '관여' 정황이 더 짙어진다.
11월 초 작성된 메모에는 '중앙당과 BH, B 제거→송 장관 체제로 정리'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민주당과 청와대(BH)가 송 시장의 유력 경쟁자인 B 씨를 '제거'하고 송 시장이 민주당 후보가 되게 할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송 시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다.
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송 부시장 수첩에서는 '2017년 10월 10일 단체장 후보 출마 시, 공공병원 (공약). 산재모(母)병원→좌초되면 좋음.'이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산재모병원은 하명수사 피해자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 공약이었다.
산재모병원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불합격한 것은 지방선거 투표일을 16일 앞둔 지난해 5월 28일이다.
수첩엔 송 부시장이 송 시장과 함께 2017년 10월 12일 서울로 출장을 가 청와대 관계자와 산재모병원과 관련된 논의를 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명 수사 의혹과 관련해 어제(19일) 조사를 받은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검찰이 보여준 '송병기 수첩'에 청와대와 자신의 관계가 담겨 있고, 자신에 대해 안 좋게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송 부시장 수첩에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 시장 선거캠프의 움직임, 청와대 측의 조력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 타당성심사과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압수수색했는데 '송병기 수첩'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수첩이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했다.
사건 관계인들은 이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정했지만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사건들의 상고심 선고 때 수첩의 증거능력을 일부 인정했다.
송 부시장 수첩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 인사들을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자체 여론조사를 하게 하고,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에 친박 인사들 명단을 전달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작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