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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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제로페이’라는 새로운 간편결제 시스템을 선보였다. 영세한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였다. 대대적인 홍보를 곁들였다. 예산과 인력도 집중했다. ‘구청장도 안 쓰는 결제 시스템’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지만 서울시는 꿋꿋이 밀어붙였다. 그로부터 1년. 서울시가 받아든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낙제점에 가깝다’는 박한 평가도 있다. 서울시의 ‘파격 실험’은 어디서 틀어진 걸까.
박원순의 '핀테크 실험'…제로페이 '예고된 실패'
소비자에게 결제수단으로 인정 못 받아

20일 서울시와 제로페이 운영법인인 간편결제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제로페이 시범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지난 16일까지 1년간 누적 결제액은 696억원에 그쳤다. 일반적인 결제 수단과 비교하면 그 ‘초라함’은 더 도드라진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신용·체크카드 결제액 추정치는 910조원에 달한다. 제로페이는 이런 거대 시장에서 겨우 0.0076%를 차지한 셈이다.

서울시의 올해 제로페이 결제액 목표치는 8조5300억원. 목표 대비 달성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제로페이 가맹점은 31만여 곳으로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라며 “실적이 가맹점 수에 크게 못 미친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에게 유효한 결제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수수료 제로’라는 본연의 목적도 온전히 달성하지 못했다. 제로페이는 ‘연 매출 8억원 이하 소상공인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고 선전한다. 혜택을 받으려면 ‘상시 근로자 5인 이하’라는 소상공인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가맹점은 1.2%의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체크카드 수수료율(1.3%)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 올해 553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제로페이 연계 사용을 위해 수백억원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그런 간편결제 서비스 중 하나’

간편결제업체 관계자는 “제로페이가 2~3년 전에 출시됐다면 간편결제 시장의 태풍이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쟁이 덜 치열한 시기에 등장했다면 간편결제 시장을 선점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제로페이는 출범 시기가 늦었다.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 민간 간편결제업체와 정면 대결을 벌여야 했다. 애초에 승산이 낮은 승부였다.

자본력도 달렸다. 민간 업체들은 5%의 적립금을 쌓아주고, 품목별로 20~30%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수차례 벌였다. 세금과 민간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제로페이는 흉내 내기 어려운 혜택이다. 제로페이가 ‘그저 그런 간편결제 서비스 중 하나’가 돼 버린 원인이다.

참여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는 점도 사업 동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제로페이는 은행 앱(응용프로그램), 핀테크(금융기술) 앱의 부가기능 중 하나로 운영된다. 은행과 핀테크사가 자사 서비스 대신 제로페이를 활성화할 이유가 없다. 밴 업체 관계자는 “제로페이로 결제할 때 수수료와 비용을 상계해보면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업체들이 관(官)의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에 참여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실패한 관치페이’ 단정 이르지만…

제로페이를 ‘실패한 관치페이’로 단정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제 건수와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간편결제진흥원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보를 목표로 신용결제 활성화를 추진한 과거 정부처럼 지자체 및 공공기관과의 제휴를 확대하는 보급 계획을 마련했다. 서울시도 칼을 뽑았다.

제로페이와 연동되는 2000억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지역화폐는 할인율이 높고, 지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특성 때문에 소상공인에게 인기가 높다. 이 소식에 1년여간 도입을 주저했던 한국마트협회가 제로페이 가맹점에 합류했다. 마트협회 소속 ‘동네마트’는 4000곳이 넘는다.

그럼에도 제로페이의 미래를 밝게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결제업체 관계자는 “제로페이는 간편결제의 브랜드일 뿐 신용카드처럼 보편적 망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1~2년 새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단명 페이’가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대훈/박진우/송영찬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