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 "인화부터 32년 걸려"
"일제강점기 문서 20만장 해설과 등록이 새로운 과제"
"고화질 유리건판 사진 공개 소식을 알린 뒤 'e뮤지엄' 방문자 수와 페이지 뷰를 찾아보니 몇 배 늘었더라고요.

특히 유리건판 사진 페이지뷰는 12월 초에 일평균 30건이었는데, 11일 이후 900건으로 30배 증가했습니다.

"
김규동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의 고화질 디지털 파일 공개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0일 소장 중인 유리건판 사진 3만8천170점을 전부 고화질로 디지털화해 e뮤지엄(emuseum.go.kr)에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유리건판 사진 저화질 파일을 공개한 데 이어 1년 만에 A4 용지로 인쇄할 수 있는 고화질 파일을 온라인에 올리고, 이를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기존에 유물 공개에 다소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중앙박물관의 유리건판 고화질 파일 게시에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좋은 평가가 잇따랐다.

고화질 유리건판 사진 공개 작업을 주도한 김 부장은 "박물관 소장품은 국민의 자산이므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박물관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유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유리건판은 감광성을 지닌 액체 물질인 감광유제를 유리판에 발라 건조한 일종의 필름으로, 20세기 초반에 널리 쓰였다.

일제는 1909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와 만주 지역 문화유산과 풍습, 자연환경을 유리건판 사진으로 남겼다.

광복 이후 중앙박물관이 유물과 함께 접수한 유리건판 사진 중에는 고고학 관련 자료가 1만4천여 점으로 가장 많다.

이어 건축 1만1천여 점, 미술 6천600여 점, 역사자료 3천여 점, 인류·민속 2천700여 점이 각각 존재한다.

가로 160㎜·세로 115㎜인 소형 건판이 전체의 85.6%를 차지하고, 가로 303㎜·세로 252㎜인 대형 건판도 8.5%에 이른다.

박물관이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는 온도 16∼24도, 습도 40∼60%인 전용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김 부장은 "한국인 신체를 찍은 유리건판 사진은 인류학 자료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의도는 좋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자료가 남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리건판 사진을 인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1987년으로, 600만 화소 파일 공개까지 32년이 걸렸다"며 "그동안 유리건판 목록집을 출간하고, 등록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서울대와 성균관대에 각 1천 점씩 있다고 알려진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을 디지털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내년에 미술사학계와 함께 유리건판을 소재로 학술대회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과제로 중앙박물관에 있는 일제강점기 문서 약 20만 장의 등록과 해설을 꼽았다.

김 부장은 "문서 한 장, 한 장은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데, 옛 일본어로 쓴 내용은 일반인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며 "문서를 해석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면 유리건판 사진, 유물과 비교하는 연구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제강점기 문서 중에는 출장 보고서도 있고 유물 조사 보고서도 있습니다.

문서도 사진을 새롭게 찍어 고화질 파일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또 유리건판 사진 전시도 검토 중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