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부족"…11조7천억원 부정축재 추산, 환수는 3조9천억원
마르코스 일가, 처벌도 받지도 않고 오히려 정치적 재기 성공

필리핀 정부가 고인이 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일가에게서 부정축재 재산을 환수하려는 노력이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17일 GMA 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반부패 특별법원은 전날 필리핀 정부가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와 가족을 상대로 제기한 2천억 페소(약 4조6천억원) 환수 소송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필리핀 법원, 독재자 마르코스 재산환수 소송 번번이 기각
법원은 "마르코스 정권에서 계엄령이 내려진 기간 잔혹 행위가 자행됐고, 국가 자산 약탈이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정부가 부정축재의 증거라며 제출한 서류가 대부분 복사본이어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고, 일부는 읽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반부패 특별법원은 이에 앞서 지난 8월, 9월, 10월에도 같은 이유로 마르코스 일가에게 제기된 재산환수 소송에서 모두 마르코스 일가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소송 가액은 각각 1천20억 페소(약 2조3천억원), 10억 페소(약 229억원), 2억6천만 페소(약 61억3천만원)였다.

이로써 필리핀 정부가 4차례 연속 재산환수 소송에서 패소했다.

또 1987년 필리핀 대통령 직속 '좋은 정부위원회'가 마르코스 일가에게 제기한 재산환수 소송 가운데 지금까지 23건이 기각된 것으로 집계됐다.

남은 판결은 18건이다.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 집권에 나섰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쫓겨났다.

이후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9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집권 20년간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 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약 11조7천억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재산은 1천726억 페소(약 3조9천억원)에 그친다.

마르코스 일가는 인권 탄압과 부패 행위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멜다는 1992년 귀국해 대선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3연임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딸 이미는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를 역임한 뒤 올해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주지사직은 이멜다의 손자인 매슈 마르코스 마노톡이 승계했다.

이멜다의 외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도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거쳐 2016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일가의 지원을 받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마르코스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허용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