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최민식·한석규 연기 앙상블 볼거리
한 나라 임금으로 늘 백성을 굽어봐야만 했던 세종. 천한 노비로 태어나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없어 땅만 보고 살았던 장영실.
두 사람이 궁 뒤뜰에 함께 나란히 누워 같은 하늘, 같은 별을 본다.

그 순간만큼은 신분도, 귀천도 따로 없다.

행복한 꿈에 젖어 미소를 짓는 두 사내가 있을 뿐이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천문:하늘에 묻는다'가 그려낸 조선의 두 천재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다.

출발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한 줄의 역사다.

'장영실이 감독한 안여(安輿·임금이 타는 가마)가 튼튼하지 못해 부서져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했다'는 내용.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대 '안여 사건'을 전후한 역사의 빈틈을 메워나간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세종은 관노였던 장영실의 타고난 재주를 알아보고 정5품 행사직을 하사한다.

장영실은 그 후 20년간 세종 옆을 지키며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의기를 만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은 정통사극도 기품 넘치는 멜로로 변주할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

'덕혜옹주'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뚜렷하게 발휘한다.

영화의 밀도와 온도를 높이는 것은 세종과 장영실의 훈훈하고 절절한 브로맨스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평생 전하 곁에 있는 것입니다.

" 두 사람은 군신 관계를 넘어 때로는 벗 같고, 연인 같다.

허진호라는 '멜로 장인'과 최민식·한석규 두 '연기 장인'이 힘을 합쳐 빚어낸 결과다.

특히 두 배우는 '쉬리' 이후 20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났지만, 그 세월만큼 더 단단해진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최민식은 아기처럼 순진하고 순수한 장영실을 연기한다.

극 중 장영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곁을 내준 세종을 일편단심 지키는 '세종 바라기'다.

세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존경과 설렘, 사랑과 같은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때로는 세종에게 앙증맞은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은 익숙한 듯하면서, 또 다르다.

장영실을 대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다.

조선이 홀로 서고, 누구나 읽고 쓰고 배울 수 있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군주로서 깊은 고뇌도 보여준다.

그러다 결정적 순간에는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가던 두 사람이 마지막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대목에선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하늘과 땅 같았던 두 사람 관계가 순탄할 리 없다.

조정의 신하들은 조선의 근간인 신분 체계를 뒤흔든 둘을 끊임없이 이간질한다.

명나라 역시 조선이 천문사업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당시 시대상은 요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해 씁쓸함을 남긴다.

이 영화에는 흔히 말하는 '연기 구멍'이 없다.

원로 배우 신구를 비롯해 김홍파, 김태우, 김원해, 임원희 등 중견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을 맡아 웃음과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허준호는 짧은 등장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뽐낸다.

팩션 사극이지만, 천문 관측기구 간의와 간의대를 비롯해 자격루 등 다양한 발명품들은 고증을 거쳐 실제처럼 재현해 볼거리 역시 쏠쏠하다.

다만,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에 주로 초점을 맞추다 보니 플롯은 다소 단선적으로 느껴지는 편이다.

처음부터 둘의 감정에 오롯이 이입하지 못하다면 13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다소 버거울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오는 26일 개봉.


/연합뉴스